일본은 우리나라보다 20년 가량 일찍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다. 2005년에 이미 고령화율이 20%를 넘어섰고 현재는 30%에 육박한다. 10명 중 3명이 65세 이상 고령자들이라는 뜻이다. 그런 일본에서 70대 가운데 절반이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일본 전문 저널리스트인 최인한 시사일본연구소장이 마침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를 통해 일본인들의 정년 후 실태를 날카롭게 파헤친 사카모토 다카시의 <정년 후 진실(ほんとうの定年後)>이란 책을 소개 주목을 끈다.
2022년 말에 출간되어 10만 부 이상이 팔린 이 책은 방대한 데이터와 사례들을 모아, 정년 퇴직한 일본인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정년 후 일본인의 15가지 진실’ 같은 내용은 곧 초고령화 사회를 맞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 고령의 일본인들, 왜 일하나 최인한 소장은 “최근 일본에서 고령자들의 노동 참가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고 전한다. 2020년 기준 70세 남성 취업률이 45.7%에 이르고, 최근 10년 새 여성 노동자들의 노동 참가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정년 후에도 노동시장에 남아 있는 것은 이젠 당연한 일이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에서 고령자들이 일하는 광경은 흔하게 볼 수 있다. 80대 노인을 편의점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각종 시설에서 활약 중인 경비원이나 관리원 가운데도 고령자가 많다. 철도역 차량 관리, 공공시설 정비 등 업무도 이들 고령자를 빼놓으면 상상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들 중에는 경제적으로 충분한 여유가 있지만, 조금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거나 가계에 도움이 되고 싶어 일하는 사람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연금 수령액이 부족해 일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려울 만큼 핍박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까지 다양한 목적을 갖고 있다.
◇ 일본 경제를 지탱하는 정년 후 ‘작은 업무’ 저자 사카모토 다카시(坂本貴志)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정년 후 ‘작은 업무’를 통해 풍요로운 삶을 성취한 사람들의 모습이다. 일본 사회의 일상 생활 속에 정년 후 일하는 사람들의 ‘작은 업무’가 필요하며, 실제로 이런 업무들이 일본 경제를 버텨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년 후 사람들을 둘러싼 상황은 각양각색이지만, 이제 일본 사회에서는 이전과 다른 형태의 사람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고 전한다. 정년 후 무리하지 않고, ‘작은 일’을 하면서 매일 조심스럽게 행복한 생활을 하는 평범한 일본인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
일본에선 고령자 인구의 증가 및 노동 참가 촉진에 따라 고연령자 가운데 취업자 수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다만, 높은 수입을 벌어들이는 절대 숫자가 점점 증가하고 있으나, 아직은 정년 후 취업자의 평균 수입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 정년 후 수입, 은퇴 전에 비해 격감 일본 국세청 ‘민간 급여실태 통계 조사’에 따르면 2019년 급여 소득자의 평균 연수입은 436만 4000엔이다. 이들 임금 노동의 평균 연수입은 20~24세에 263만 9000엔을 시작으로 55~59세 때 518만 4000엔으로 정점을 이룬다. 하지만 정년을 맞는 60세 이후 크게 줄어 60~64세가 410만 7000엔, 65~69세가 323만 8000엔, 그리고 70세 이후는 282만 3000엔으로 크게 떨어진다.
60대 전반의 평균 수입은 357만 엔이다. 상위 25% 소득은 450만 엔에 이르지만 중앙치는 280만엔 정도다. 그런데 60대 후반에는 평균 수입이 256만 엔까지 떨어지고 중앙치도 180만 엔으로 감소한다. 상위 25% 소득 역시 300만 엔으로 뚝 떨어진다.
정년 후엔 300만 엔 이하가 다수가 된다. 정년 후 비취업자인 사람, 다시 말해 수입이 ‘제로(0)’인 사람도 많기 때문에 고령자 전체에서 어느 정도 수입이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는 게 일본 고령자의 실제 현실이라고 저자는 전한다.
◇ 50대 후반, 정년 직후 두 차례 임금 절벽 일본 직장인의 수입 피크 시기는 정년 직전인 50대 후반이 아니라 50대 중반이다. 수입 감소의 1차 시기는 50대 후반 찾아온다. 정년을 앞두고 직급 하락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많은 기업들이 ‘직급 정년제도’를 도입해 50대 중반 이후 임금이 줄어드는 구조가 된다.
2차 임금 삭감의 파도는 정년 직후에 찾아온다. 정년을 맞는 단계에서 회사를 퇴직하거나 같은 회사에서 재고용으로 바뀌면서 임금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60~64세의 평균 임금 소득은 55~59세의 80% 정도인데, 여성이나 파트타임 등을 제외하면 하락 폭은 더 클 것으로 추정한다.
정사원으로 계속 근무해온 사람으로 한정할 경우, 같은 근무체계에서도 정년 직후는 정년 전과 비교해서 30% 정도 임금이 떨어지는 것이 일본사회의 실상이라고 전한다.
◇ 정년 후 ‘작은 업무’가 중요한 이유 일본의 정년 후 소득 상황을 보면, 연수입은 정년 전후 불연속적이거나 일시적으로 감소하기보다 오히려 정년 전후로 완만히 또는 계속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무리 없는 범위 내에서 취업 조정을 하고 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창업을 한 사람들도 자신의 건강이나 업무에 대한 열정, 체력 등에 변화를 고려해 사업을 축소하게 되고, 정년 후 촉탁 및 파트타임,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으로 취업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수입을 줄이면서 무리 없는 일로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실제로 일본에서 70세 시점에서 700만 엔 이상의 연수입을 벌어들이는 사람은 취업자 가운데 5.2%에 그친다고 한다. 이에 최인한 소장은 “연령과 관계 없이 도전을 계속해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지만, 현실 사회에서 그렇게 일을 계속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최 소장은 “초고령 사회 일본에서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취업 기간이 연장되겠지만, 과거 추이를 보면 정년 후 고수익을 받는 사람이 급속히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고 전망한다.
그는 “정년 후 고수입을 실현하는 사람은 현실적으로 그리 많지 않다”며 “고령자들이 현실적으로 ‘작은 업무’에 만족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고령화는 새로운 사회 현상이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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