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미국임상종양학회 연례학술회의 ‘ASCO 2024’에서 세브란스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손주혁 교수가 유방암 치료제 카보플라틴(carboplatin)이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들의 재발 위험을 크게 낮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주목받았다. 당시 손 교수는 6000편의 연구 성과 중 ‘임상을 바꿀 10대 연구’로 꼽혔을 만큼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 22개 의료기관이 900명의 유방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10년 동안 진행한 연구 성과이자, 유방암 환자를 살리기 위해 달려온 집념의 결과였다. “유방암 치료는 의사에게 맡기고, 환자는 스스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하는 손 교수를 세브란스 소식 1월호에서 특별 인터뷰를 했다. 그 내용을 일문일답식으로 요약 소개한다.
- 유방암 치료 성과가 나날이 크게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환자들이 좀 더 희망을 가져도 될까.
“유방암 아형은 보통 3가지로 구분한다. 호르몬수용체 양성(HR+) 유방암, HER2 양성(HER2+) 유방암, 그리고 삼중음성(TN) 유방암이다. 이 가운데 호르몬수용체 양성이 전체 유방암 환자의 70%를 차지한다. 유방암 치료에서 최근 가장 큰 변화는 치료 약제라고 할 수 있다. 호르몬수용체 양성의 경우, CDK4/6 억제제가 완전히 표준치료로 들어와 환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조기 유방암, 전이성 유방암에서 이미 표준치료로 사용되고 있는 표적치료제다. 그동안 암세포가 공격적인 성향이 강해 예후가 좋지 않다고 여겨졌던 HER2 양성 전이성 유방암 환자의 치료 성적도 크게 좋아졌다. 항체-약물접합체(ADC) 제제인 엔허투(성분명 트라스투주맙 데룩스테칸)가 표준치료제로 자리잡고 보험급여도 적용되어 환자들이 효과와 비용 부담에서 큰 혜택을 보고 있다. HER2 저발현의 경우도 엔허투의 효과가 입증되어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 유방암에서 많이 듣게 되는 호르몬수용체가 있는지, HER2 양성인지 음성인지 아는 것이 왜 중요한가.
“조직검사를 통해 확인된다. 유방암 세포에는 여러 수용체가 있는데, 특정 수용체의 존재 여부와 과발현 여부에 따라 질병의 진행 정도가 다르다. 치료 약제와 예후 등에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환자에게 도움 되는 치료 약제를 결정하는 데 꼭 필요해 검사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다. HER2 양성 유방암은 삼중음성 유방암만큼이나 치료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예후가 호르몬수용체 양성 유방암 정도로 좋아졌다. 획기적인 약들 덕분이다. 아직 부족한 상황이지만, 삼중음성 유방암도 면역 치료제가 나와 이전보다 조금 더 희망적이다.”
- 유방암 환자들은 재발과 전이에 대해 걱정이 많다.
“일부 전이성 유방암 환자에서도 ‘완치’라는 말을 꺼낼 수 있을 정도로 현재 유방암 치료 성적이 많이 좋아졌다. HER2 양성 유방암 환자로 10년 이상 아주 잘 지내는 분들도 있고, 심지어는 전이성 유방암인데 몇 년 치료 후에는 그냥 확인차 1년에 한두 번 진료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꽤 많다. 예후가 안 좋다고 알려진 삼중음성 유방암도 최근에 면역치료제가 나오면서 3~4년이 지나도록 치료 없이 잘 지내시는 분들도 있다. ‘전이성 유방암=죽음’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일부 환자들 가운데는 거의 완치에 가까운 분들이 있다. 유방암 치료 약제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희망적이다.”
- 유방암 진단을 받았을 때 환자들이 명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아직도 치료를 거부하는 분들이 있다.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의료기관을 선택할 때는 그곳이 ‘다학제 치료’가 실제 이뤄지는 곳인지 확인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유방암 치료는 수술은 외과에서, 항암치료는 종양내과에서, 방사선치료는 방사선종양학과에서 담당한다. 그 외에도 영상의학과와 병리과, 재활의학과 등 여러 진료과들의 다학제 협진으로 진행돼야 한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그렇지 못한 경우들을 종종 접한다. 유방암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특히 주치의가 종양내과 의사인지부터 꼭 확인할 필요가 있다.”
- 특별히 환자들과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나.
“암 진단을 받으면 누구나 ‘왜 내가 암에 걸렸지? 왜 나만…’이라고 생각한다. 암 환자는 치료받느라 많이 힘들고, 여러 부작용을 견뎌야 하고, 사회적인 활동도 제한되는 등 여러 어려움을 겪게 된다. 우리 의료시스템상 의사가 환자에게 정서적인 지지까지 해주기는 어려워 안타까울 때가 많다. 진료실 안에서의 치료는 전문가인 의사에게 맡기고, 환자는 긍정적인 마음을 갖고 스스로 정말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길 당부드리고 싶다.”
- 임상시험의 중요성을 평소 크게 강조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임상은 신약이 개발되어 실제 환자에게 사용되기 전에 진행되는 일련의 연구 과정이다. 항암제 임상시험은 신약의 효과와 안정성을 조사하거나, 시판된 약을 다른 조합이나 허가받지 않은 암종에 사용하는 것 등이 있다. 1상 임상시험은 실험실에서 암세포나 동물실험을 거쳐 개발된 항암제를 처음으로 환자에게 투여하는 과정이다. 2상은 실험실 및 1상 연구 결과를 분석해 효과를 볼 가능성이 큰 특정 암 환자들 수십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다. 3상은 새로운 치료법과 기존의 치료법을 직접 비교해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효능이 입증되면 FDA 승인을 거쳐 환자에게 적용된다.”
- 1상, 2상의 초기 임상시험이 최근 늘고 있다고 들었다. 긍정적인 현상인가.
“종양내과 의사로서 반가울 때가 많다. 마땅한 치료 약제가 없는 환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약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환자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비록 효능과 부작용, 안정성에 대한 입증이 조금 부족할지라도, 이 환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신약 임상시험을 찾는다. 이제는 국내에서도 참여가 가능하다. 최근에는 글로벌 제약사뿐 아니라 작은 바이오벤처 회사의 신약 임상시험도 많아져 환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연구자 주도의 임상시험 필요성을 강조하시는 것으로 안다.
“연구자 주도로 약의 효능을 확인해 이 무서운 병의 완치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이다. 그래서 연세암병원 종양내과 김건민 교수와 함께 대한항암요법연구회 산하 26개 병원의 도움으로 4년 반 동안 환자 880명을 등록하고 5년 동안 추적 관찰하는 대규모 3상 연구를 진행했다. 그리고 카보플라틴을 기존 항암제에 추가하면 약 34%의 재발률을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향후 전 세계의 많은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들이 이 연구결과를 기반으로 카보플라틴을 추가로 치료받아 재발되지 않기를 바란다.”
댓글
(0) 로그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