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건보 예산편성·결산안 국회 보고, 필수일까 옥상옥일까

조진래 기자 2023-12-05 07:42:45

건강보험 예산안과 결산안 등을 국회에 보고해 매년 심의·의결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건보 재정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국회 통제 수준을 한층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감사원이 지난 8월에 이런 주장을 내더니 정부출연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도 최근 같은 주장이 담긴 보고서를 냈다. 

두 기관의 요지는 이렇다. 세계 최고의 가파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노인인구가 증가하고, 합계출산율 0.7의 저출산에 건보 재정을 담당해 줄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현 상황에서, 건보 재정이 위태로울 수 있으니 국민 대의기관인 국회에서 보다 면밀하고 꼼꼼하게 들여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취근 보건복지부에 제출한 보고서는 제2차 국민건강보험종합계획(2024∼2028년) 수립을 위한 연구용역의 상격이라 정부가 이 내용을 채택할 지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건강보험의 건전성과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고육책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건보재정 상황에 대해 국민들이 제대로 알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이 간다.

하지만 우리는 국회가 규제 기관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건강보험이 우리 국민 모두의 ‘건강 안전망’이기에 재정상황을 수시로 점검하고 개산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은 공감이 되지만, 그런 기능을 국회에서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냐는 문제는 또 다른 문제다. 

건보 당국이 외부 통제를 제대로 받지 않아 재정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건강보험이 사실상의 정부지원금을 주된 재원으로 하는 준 조세적 성격도 있기에 국회의 심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지만 자칫 옥상옥이 될 우려를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 국회는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다. 정쟁과 편 가르기로 제대로 된 정부 예산 심사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자칫 건보 재정에 관한 통제권까지 부여될 경우 자칫 건강보험 관리 및 운영에 관한 지나친 간섭과 강압, 그리고 제대로 된 심의보다는 서로의 주의주장에 매몰되는 사태가 빚어질까 우려할 수 밖에 없는 지경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우려하는 대로 보험재정의 운용 주체가 모호해지고 제도 운용의 경직성이 높아져 정작 국민 의료수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전문적인 의사결정이 필요한 때에 정치권의 콧바람이 작용될 위험이 사실은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건강보험이 국민 건강의 마지막 파수꾼임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건보 재정이 투명하고 명확한 기준에 따라 운용되고 그 과정이나 성과가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되길 희망 한다. 하지만 운영체계를 ‘옥상옥’으로 만들어 오히려 재정의 투명성과 자율성을 헤치는 결과를 낳을 우려가 있다면, 당연히 그런 문제의 불씨부터 제거한 후에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현재 건강보험은 다른 사회 보험성 기금과는 달리 건보공단의 일반회계로 운영되고 있다. 정부지원금을 제외하고는 예산과 결산 등 주요 의사결정은 보건복지부와 장관 산하의 건보 정책 최고 의결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이뤄진다. 복지부 차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노동계와 경영계, 의약계, 공공위원들로 고르게 구성된 기존 시스템부터 정비하는 게 순서다.

국회가 건보재정의 통제권을 가져가 제대로만 운용해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선뜻 그런 중책을 맡기기엔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너무 떨어져 있다. 국회가 다시 신뢰를 회복하고 실력을 인정받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까지는 기존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단도리 하는 게 맞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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