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국회에 발목 잡힌 ‘재정준칙’… 국가채무 관리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가

조진래 기자 2024-01-02 12:58:03

나라 살림의 중장기 관리 대책을 골간으로 하는 정부 ‘재정준칙’이 새해 들어서도 여전히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정치권에 과연 나라 채무 관리의 의지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출산율은 곧 0.7마저 깨질 판이고 가속화하는 고령화 상황에 재정의 지속 가능성이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정치권의 방치와 방임은 새해에도 여전하다.

재정준칙은 나라 빚이 위험수위까지 쌓이지 않도록 나라살림의 적자 규모를 제한하는 암묵적인 준칙이다.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 국민연금 등 4대 보장성 기금 수지를 차감한 ‘관리재정수지’를 지표 삼아 나라 살림의 규모와 수준을 총괄 관리하기 위한 규율이다. 이런 중요한 원칙을 담은 법안이 아직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묶여 있는 것이다.

이 법안의 골자를 보면 왜 재정준칙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법안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매년 GDP의 3%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국가채무가 GDP 대비 60%를 넘어서 위험 상황에 이르게 되면 적자 폭을 GDP 대비 2% 이내로 축소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렇게 정부 지출을 제한함으로써 나라 살림이 관리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뤄지도록 하자는 취지다.

여야 합의 하에 수정안까지 만들어진 상태다. 폭우나 태풍 등 재난이 발생했을 때는 예외적으로 재정준칙의 상한을 넘어설 수 있는데, 이런 경우 그 다음 해에 세계잉여금의 100%를 채무 상환에 갚도록 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는 하루빨리 국회에서 통과시켜 의무 준칙화해야 하는 내용들이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은 말로만 재정 안정을 얘기할 뿐, 정작 관련 법안이 국회 소위에 올려졌는데도 도통 관심이 없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제 텃밭 가꾸는 데만 혈안이다. 급하지도 않은 다른 법안들은 제 각각의 이익을 위해 통과시키면서도 정작 국가 관리의 시금석이 될 이 법안은 본회의에도 올라가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다.

이런 행태는 다분히 여야 편가르기와 갈라 치기 탓이다. 전임 문재인 정부가 ‘통합재정수지’로 운영하던 것을 현 윤석열 정부가 ‘관리재정수지’로 기준을 바꾸고 단순 수지·채무 기준으로 바꾸면서 2년 연속 법제화 작업이 무산되고 있다. 여야가 논의해 만든 법안을 여야 합의체인 국회, 그것도 관할 소위에서 조차 논의되지 않는다는 것은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대로 국가채무 관리가 방치된다면 나랏빚은 점점 더 쌓여갈 수 밖에 없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70년 우리나라의 국가채무가 7137조 6000억 원으로 GDP의 192.6%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 바 있는데, 이 수치는 우리가 재정관리를 그나마 다 했을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제정준칙이 무산될 경우 이 수치는 훨씬 커질 것이 분명하다.

정부 지출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묶지 않을 경우 관리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라 빚이 쌓이는 속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짊어져야 할 부채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재정준칙 도입이 필요한 진짜 이유다. 

재정 준칙의 법제화를 더 이상 늦출 수는 없다. 가깝게는 4월 총선 등을 앞두고 정치권의 요구에 따른 범 정부의 지출이 얼마나 늘어날 지 예단할 수 없는 상황이고, 길게 보면 무분별한 정부 지출을 제도적으로 막지 않을 경우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부디 정치권이 재정준칙 법제화를 위해 하루 빨리 손을 잡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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