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평행선' 의료파행...정녕 누구도 양보할 수 없는 사안인가

조진래 기자 2024-03-17 18:41:54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싸고 빚어진 의료 현장의 파행이 벌써 한 달을 넘기고 있다. 사직서를 내고 의료 현장을 떠난 1만 명 전공의들의 복귀 움직임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 가운데 이제는 교수들까지 합세할 태세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이라는 국민들의 분노와 호소에도 불구하고, 이대로 가다간 의료 현장의 공백이 국민들의 상식 선을 넘어설 것으로 우려된다.

국민들은 하나 같이 정부와 의료계의 빠른 대화 복귀를 호소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 정부 측 책임자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전공의들과 비공개로 회동했다는 소식이 들려와 란 가닥 기대를 걸게 했으나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대화를 나누기는 했는지, 그렇다면 어떤 대화가 오갔고, 접점은 찾았는지 어느 것 하나 알려진 것이 없이 캄캄할 따름이다.

이대로 정부와 의료계가 평행선을 달린다면 당장 오는 25일이면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까지 줄줄이 사직서를 제출하게 된다. 정말 마지막까지 생명을 다투는 필수 의료현장을 제외하곤 대부분 현장에서 의료진이 사라진다는 의미다. 전공의까지 합쳐 1만 6000여 명의 숙련된 의료진이 현장을 떠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가늠할 수 조차 없다.

국민들은 당장은 의료계를 강하게 성토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들과 진정성 있는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정부까지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의사들이 환자를 내팽개치고 집단 행동을 하는 것도 불편하고 화가 날 일이지만, 처음부터 대화의 문을 닫고 강공으로만 몰아치고 있는 정부의 유연성 부족도 정상이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국민들이 절대 이해 못하는 것은, ‘의대 정원 2000명 정원’이 그토록 모두가 양보할 수 없는, 목숨 걸고 사수해야 할 단 하나의 불변의 목표인가 하는 점이다. 의료계가 그토록 ‘2000명 증원’부터 풀어달라고 함에도 조금의 유연함도 보이지 않는 정부 태도는 과연 누굴 위한 것이냐는 성토도 이어지고 있다. 현장을 떠나는 의료진 만큼이나 융통성 없고 고집만 부리는 정부에 화가 나는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는 이 사회에 과연 ‘어른’이 있는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 갈등이야 언제 어느 사안을 놓고도 빚어질 수 있지만, 그런 상황을 슬기롭게 봉합하고 해결하는 데 앞장 서거나 결정적인 도움과 조언을 줄 어른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의료계는 그저 투쟁가들만 있을 뿐이고, 정부에선 “밀리면 끝”이라는 결기와 고집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로만 꽉 차 있다는 비판이 가득하다.

우리는 지난 2000년 의약 분업과 2020년 의대 증원 반대 사태에서 어떤 교훈도 얻지 못한 듯하다. 아니, 오히려 그 때의 경험이 쌍방을 더욱 믿지 못할 대상으로 만든 것은 아닌지 답답하기만 하다. 서로에게 항복을 강요하며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과연 지난 역사와 경험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는 지 새삼 반성하게 된다.

정년 국민들을 사지로 몰아갈 생각이 아니라면 의료계는 당장 ‘선 복귀, 후 대화’의 자세를 보여야 할 것이다. 조건 없이 의료현장에 복귀해 환자를 돌보겠다는 선언이 오히려 정부의 항복을 받아내는 길이다. 정부도 증원 규모에 대한 탄력적인 접근과 함께 의료계의 목소리를 더욱 진실되게 듣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누구든 양보하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 싸움이 끝없이 이어질 상황이다. 사로를 자극하는 공격 일변도의 투쟁보다는 국민들의 입장에서 먼저 양보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상대를 진정으로 이기고 국민들로부터 더 자신들의 주장을 이해시키고 국민들을 제 편으로 이끄는 진정한 승자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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