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은 일반인들에게 가장 생존 가능성이 낮은 암으로 인식되고 있다. 실제로 다른 암으로 투병하다 건강을 회복한 사람들은 많이 보지만, 췌장암 환자가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는 소식은 좀처럼 듣지 힘들다. 하지만 연세암병원 종양내과의 이충근 교수는 “기적은 희망을 타고 찾아오니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며 4기 췌장암으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박용수 씨의 기적을 소개했다.
그는 단 1%의 가능성도 포기하지 않고 혹독한 항암 치료를 40여 차례나 받으며 버텨내, 결국 암을 다 제거하고 3년 넘게 일상을 누리고 있다고 한다. 그룹 ‘작은별가족’의 일원이던 부인 강애리자 씨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남편을 지극정성 간호했다. 이들은 투병기를 엮어 <살려줘서 고마워, 살아줘서 고마워>를 출간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세브란스 소식>에 올라온 이충근 교수의 췌장암 치료법을 소개한다.
- 췌장암은 생존율이 가장 낮은 암으로 악명 높다. 왜 그런가. “췌장은 위장의 뒤편, 배 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데다 암 증상도 늦게 발생해 조기 발견이 어렵다. 또 췌장암은 주요 혈관을 침범할 확률이 높아 암 덩어리가 크지 않더라도 수술이 어렵다. 실제로 췌장암 환자 가운데 수술이 가능한 경우는 20%도 안 된다. 췌장암 자체의 생물학적 특성도 문제다. 췌장암에서는 치료의 타깃이 되는 표적 자체가 거의 발견되지 않아 사용 가능한 표적항암제가 드물다. 면역항암제의 효과도 미미하다. 췌장암은 공격적이고 재발을 잘하지만, 수술 가능한 환자가 적고 항암제의 효과가 제한적이다 보니 안타깝게도 치료가 쉽지 않다.”
- 췌장암 치료 과정은 병기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나. “초기 치료 방향을 설정할 때는, 수술 가능 여부가 더 중요하다. 수술로 암을 최대한 제거해야 암 완치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술 가능 여부에 따라 절제 가능 췌장암, 경계성 절제 가능 췌장암, 국소 진행성 췌장암, 전이성 췌장암 4단계로 나눠 치료 방침을 정한다. 췌장암은 재발을 잘해, 절제 가능한 초기 췌장암일지라도 수술 후 재발 방지를 위해 보조 항암치료를 진행한다. 경계성 절제 가능 췌장암의 경우, 최근에는 4-6개월 정도 항암치료를 한 후 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들은 항암치료만 하나. “국소 진행성 췌장암은 4기 암에 따라 항암치료를 하면서 암의 치료 반응에 따라 수술, 방사선치료 등을 병행할 수 있다. 전이성 췌장암은 일반적으로 항암치료를 지속한다. 환자 개개인의 상태에 따라 수술, 항암치료, 방사선치료가 최적의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간담췌외과, 종양내과, 소화기내과, 방사선종양학과, 영상의학과, 핵의학과 등과 상의해 치료 방침을 결정한다.”
- 췌장암은 표적항암제나 면역항암제 등의 신약이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인가. “BRCA 돌연변이가 있는 경우엔 경구 복용하는 표적항암제를 유지요법으로 사용 가능하다. 최근에는 KRAS 돌연변이, 세포막 단백질인 CLDN18.2 등을 비롯해 새로운 표적들을 대상으로 하는 표적항암제들이 새로 개발되어 임상시험 중이다. 반응도 좋고 기존 항암제보다 부작용이 적어 비교적 안정적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다만, 췌장암은 약물 적용이 가능한 환자가 극소수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표적항암제와 세포독성항암제의 병용요법, 수술 후 재발률을 낮추기 위한 백신, 세포독성항암제와 면역항암제의 병용요법 등 췌장암의 불량한 예후를 극복하기 위한 신약 임상연구들이 종양내과를 중심으로 꾸준히 진행되고 있어 적합한 임상시험에 참여한다면 새로운 치료 기회를 기대해볼 수 있다.”
- 현재 전립선암 환자를 대상으로 연세암병원에서 시행 중인 중입자치료가 췌장암에도 효과가 있는지 궁금하다. “중입자치료는 기존 방사선치료보다 더 정밀하게 암세포만 조준 타격하는 반면 주변 장기에 미치는 부작용은 적다. 때문에 배 속 깊숙이 고정된 췌장암 치료에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고려 중인 치료 대상은 절제 가능한 췌장암으로, 나이나 전신 상태, 기저질환 등으로 인해 수술이 어려운 환자 또는 국소 진행성 췌장암 환자이다. 다만 중입자치료는 방사선치료의 일종이므로 중입자선이 도달하는 부분에만 치료 효과가 나타나는 국소치료법이므로 이 치료만으로 다양한 병기의 췌장암을 완전히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기존의 치료와 조화를 이뤄야 최적의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전이성 췌장암 환자에게는 여전히 항암치료가 핵심이다. 최적의 중입자치료를 준비해 왔으며, 곧 치료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 여전히 생존율이 낮은 암이라 지레 겁부터 먹는 환자, 보호자들도 많을 것 같다. “처음부터 치료를 아예 포기하는 환자도 간혹 있다. 그러나 췌장암은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경우가 많아, 통증 관리와 삶의 질을 위해서도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이에 더해 수술 기법, 중입자치료를 비롯한 방사선치료, 항암약제 등이 더디지만 꾸준히 발전하고 있어 기대 이상의 치료 효과를 경험하는 환자들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박용수 씨 같은 사례도 있고, KRAS G12C를 표적으로 하는 신약을 하루 한 번 복용 하면서 2년째 질병 진행 없이 안정적으로 생활하는 환자분도 있다. 모든 환자가 완치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생존 기간을 연장하고 통증을 관리하면서 가족이나 지인들과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 힘든 치료 과정을 버티는 환자와 가족에게 어떤 것을 가장 많이 당부하나. “회처럼 감염 위험이 큰 날 음식을 제외하고는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다 먹어서 영양을 충분히 보충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체중과 체력을 유지할 수 있고, 골수 기능도 더 잘 유지되고, 항암치료도 일정에 맞춰 계획대로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치료와 관련된 것은 반드시 주치의와 상의하시길 당부 드린다. 특히 주치의와 상의 없이 외부치료를 받다가 오히려 간 손상이 심해져 응급실에 실려 오는 사례가 제법 있다. 가장 효과적이고 도움이 되는 치료는 암 전문 의료기관에서 증명된 근거를 기반으로 제공하는 표준치료와 신약 임상시험임을 기억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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