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의사들, 기어이 환자들 곁을 떠나겠다는 것인가

조진래 기자 2024-06-07 15:06:36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가 결국은 국립대학인 서울대학교의 의대 교수들과 서울대병원 교수들의 무기한 휴진 결의까지 불렀다. 이들은 16일까지 전공의 사태가 해결되지 않을 경우, 17일부터 전체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다. 의료계 내부에서조차 그 동안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결국 의사들이 환자 곁을 떠나기로 한 것이다.

서울대 교수들은 예의 무기한 휴진을 번복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을 걸었다. 정부가 모든 전공의에 대한 진료유지명령과 업무개시명령을 완전히 취소하고, 현 사태 악화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전면 휴진 사태가 지속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겉으론 정부에 대한 선전포고지만, 사실상 국민과 환자들을 겁박하는 행위다.

집단 행동에 돌입한 전공의 들을 대신해 그 동안 의료현장을 어렵게 지켜온 이들 교수들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의료계의 ‘어른’이라고 할 교수들이 제자들과 똑같은 방식의 집단행동으로 환자들을 떠나 투쟁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적절치 못하다. 사태를 중재하고 해결방안을 찾아야 할 사람들이 극단적인 실력행사에 동참하는 것 자체가 어른들답지 못한 처사다.

서울대가 물꼬를 텄으니, 이제 다른 대학과 종합병원 의사들이 똑같이 의료현장을 빠져 나와 집단 휴진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비록 첫 시작이 둔탁하긴 했어도, 법원에서조차도 문제 없다고 판단한 의대 증원 문제를 놓고, 대화 보다는 실력행사를 선택한 의료계에 실망감을 떨칠 수 없다. 국민들이 과연 자신들을 외면하고 선택한 그런 집단행동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을 지 의문이다. 

지금 의대 교수들을 비롯해 이른바 의료계 어른들이 해야 할 일은 제자들과 똑같이 집단 행동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의료계 전체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고 슬기로운 해법을 찾는 일일 것이다. 문제가 된 정부의 의대 정원 정책에 대해 의료계의 의견을 모아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풀어야 한다. 자존심 싸움으로 번진 이번 사태를 해결하는 지혜를 ‘어른답게’ 찾아 양 측을 설득시켜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의사 집단은 태생적으로 엘리트주의에 빠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지녔다.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의대를 지원하고, 그렇게 수 년 동안 모든 것을 바쳐 어려운 의학 공부를 마친 대가를 어떤 식으로든 보상받으려는 속내를 가졌다고 많은 국민들은 생각한다. 이번 스승과 제자들의 집단 행동은 이런 일반 국민들의 인식을 더욱 공공히 해 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우리 의료계에 ‘어른’이 없는 것도 문제지만, 어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의료인 들에게도 문제가 적지 않다. 의료계도 정치화되어 한 번 아니면 끝까지 안되는 고집쟁이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념으로 집단화되면서,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정부 협상 제안을 무조건 배척하고, 원로들의 고언을 무시하니 생각과 행동이 과격해질 수 밖에 없다.

정부도 해 할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것은 매 한가지다. 이렇게 불통인 정부가 있나 싶을 정도다. 결론을 바꿀 생각은 아예 않은 상태로 상대방이 무릎 꿇을 때까지 고집을 겪지 않는 일관된 의료 정책이 사태를 더 악화시켰음을 이제라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의료계의 의견을 보다 충분히 수렴 못 했음을 자복하고, 이제라도 합리적인 해법을 서로 찾는 노력에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고래들 간의 자존심 싸움에 애꿎은 국민들과 환자들만 새우등 신세가 될 판이다. 이미 많은 중증환자들이 상급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어려운 상황에 놓이고 있다. 교수들마저 집단 휴진에 들어가면 환자와 가족들의 불안과 공포심은 백 배 천매 더 커질 것이다.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이렇게 환자를 외면하는 집단행동을 하겠다는 것인지 안타까울 뿐이다.

의사단체 대표들이 과연 그 이해집단을 제대로 대표하고 그들의 진의대로 따르고 있는지도 의구심이 든다. 의대생들이 ‘이 참에 좀 쉴까’ 하는 분위기에 빠질 무렵에, 이를 꾸짖고 현장을 지켜야 할 당위성을 제대로 바로잡아 준 선배와 어른들이 있었다면 사태가 이렇게 까지 엉망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이상 그런 책임 방기를 우리 선배들과 스승들이 되풀이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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