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거리로 뛰쳐나온 환자들… 아픈 이들을 더 아프게 하지 말아야

조진래 기자 2024-07-04 14:27:39

마침내 성난 환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왔다. 끝을 모르고 장기화하는 의료공백 사태가 환자와 보호자들을 거리에 내몰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들처럼 아픈 사람에 대한 의료 공급이 중단되어선 안된다고 절규했다. “필요할 때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의 권리”라고 목 놓아 외쳤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등 92개 환자단체가 4일 오전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서 ‘의사 집단휴진 철회 및 재발방지법 제정 환자촉구대회’를 가졌다. 건강과 생명을 의사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환자와 가족들이 의사들에게 그리고 정부에게 ‘치료받을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집회에 참석한 환자와 환자 가족들은 ‘무책임한 정부’, ‘무자비한 의사’라는 구호가 쓰인 피켓과 현수막을 앞세워 양 측을 거세게 성토했다. 양 측의 끝도 없는 힘 겨루기에 아무런 수단도 없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자신들을 자책하면서, 이렇게라도 환자들의 분노와 불안감을 내보일 수 밖에 없음을 절박하게 이해해 달라고 촉구했다.

정작 이날 집회에 나와 시위를 한 환자와 그 가족들은 그나마 거동이 가능한 사람들이다. 걷기는커녕 침대에서 스스로 일어나기에도 버거운 환자들은 자리도 지키지 못하고 병상에서 혹은 수술실에서 집단 휴진 철회 소식만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들을 대신해 시위 현장을 지키며 목이 터져라 호소문을 외치고 또 외치는 사람들은 절박감 자체였다.

이들은 지난 5월 말 법원이 의사단체들의 의대증원 집행정지 신청에 기각 및 각하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불복해 단체 행동을 계속하는 의료계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토로했다. 전공의 복귀를 독려하고 설득해야 할 의대 교수들마저 명분 없는 집단휴진에 동참하고 있으니 자신들의 건강과 생명은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항변한다.

이제까지 이런 대규모 환자 집회는 거의 없었다. 환자단체들이 이렇게 조직적으로 모인 것도 이례적이다. 그 동안 수차례 기자회견과 성명서 등을 통해 의사들의 집단 행동 철회를 요청했건만, 의사들은 귀 기울지 않았다. 정부 역시 그런 의사들을 얼르고 달래기 보다는 ‘해 볼테면 해 보라’ 식으로 맞서 사태를 악화일로로 치단게 했다. 

이제 사태 해결에 모두가 나서야 할 때다. 서울의 빅 5 대형 병원은 ‘무기한 휴진’ 같은 집단행동을 철화하고 하루빨리 환자들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의-정 갈등의 화풀이를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돌려선 안될 일이다. 몸이 아픈 사람들을 몸과 마음까지 아프게 해서는 의사의 자격이 없다고 할 것이다. 대단히 몰염치하고 무책임한 행위다.

환자보다는 제 제자들부터 챙기겠다는 그릇된 집단 이기주의는 이제 사라져야 할 폐습이다. 전공의가 있어야 진료도 하고 수술도 할 수 있는 절박한 상황이라면, 환자들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제자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 의료 현장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지금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후배 제자들에게 잘못된 길을 인도하는 것이란 자숙과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 역시 보다 적극적이고 책임 있는, 무엇보다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 환자들을 위해 하루 빨리 복귀하라고 다그쳐서만 될 일이 아니다. 진정성 있는 대화 채널을 복원하고 끊임없이 의사들을 설득하고 이해시켜야 한다. 환자단체들의 요구대로 상급종합병원의 전문의 중심 병원 전환 문제 등을 심도 있게 검토하고, 법으로라도 필수의료 공백 사태를 막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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