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고령 운전자 운전 제한, 단순히 나이로만 판단할 일 아니다

조진래 기자 2024-07-08 07:42:16

지난 1일 시청역 인근 역주행 사고를 계기로 고령자에 대한 운전 제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9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 운전자가 40년 이상 운전 경력의 68세 남성으로 확인된 탓이다. 이후 고령 운전자의 사고 가능성이 평균 이상이며, 사고 빈도는 물론 피해자 중상 비율도 월등히 높다는 보도들이 줄을 잇고 있다. 고령 운전자 관리제도 개선에 대한 논의도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이런 보도들은 보험개발원이 내놓은 작년 통계 자료를 근거로 하고 있다. 작년 보험에 가입된 주피보험자 기준 65세 이상 운전자의 계약건수 대비 사고건수 비율이 4.57%로, 65세 미만 운전자의 사고율 4.04%에 비해 크게 높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사고 피해자 가운데 중상자와 사망자를 합친 비율도 8.72%로, 그 미만 운전자의 7.67%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한다.

앞서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 역시 70세 이상 고령 운전자부터 교통사고 위험도가 확연하게 높아지고, 80세 이상부터는 사고 위험도가 더 가파르게 높아진다는 분석 자료를 내놓은 바 있다. 보험 유관 기관들이 내놓는 이런 통계 자료들은 사고율이 높을수록 보험사의 손해율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은연 중에 고령 운전자의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읽힌다.

베테랑 운전자가 초보 운전자보다 더 사고를 많이 낸다는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TAAS) 자료도 이런 믿음에 일조한다. 운전면허 취득 후 15년 이상 된 운전자가 가해자인 사고가 전체의 60.6%, 이들이 낸 교통사고 사망자 수도 전체 사고 사망자 수의 60.9%에 이른 반면에 면허를 딴 지 1년이 안 된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전체의 2.5%에 그쳤다는 통계다.

이 같은 통계는 초보 운전자가 교통사고를 많이 낼 것이라는 일반의 통념과는 달리 정작 운전 경력이 많은 베테랑 운전자들이 오히려 더 많은 사고를 일으킨다는 점을 일반에게 깊히 각인시킨다. 이런 자료나 보도의 결론은, 베테랑들이 지나친 자신감에 부주의하고 태만할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고령자의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것으로 늘 마무리된다.

하지만 이런 통계에 너무 집착할 경우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일련의 고령운전자 관련 교통사고 통계가 마치 큰 방향을 미리 잡아 놓고 거기에 호응할 수 있는 통계수치를 덧붙여 만들었다는 의구심도 피할 길이 없다. 고령자라고 운전 면허증을 반납하라고 하기 보다는 고령 운전자의 사고 피해를 최소화할 방도를 찾는 것이 순서일 듯 싶다.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내년에 500만 명에 육박하고, 2040년이면 1300만 명을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이들 중 생계형 운전자도 적지 않다. 연령 만으로 이들에게서 운전대를 빼앗는다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는 지적이 많다. 차라리 75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교통안전교육 대상 연령을 낮춰 이들이 바뀐 도로교통법을 제대로 숙지토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고령 운전자들도 더욱 안전 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하겠지만, 교통 약자들을 위한 배려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근 자동차 회사들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ADAS(운전자 보조 시스템)에 대한 지원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운전자들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오로지 고령자들에게서 운전 면허를 강제로 빼앗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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