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 강제화 할 일 아니다

조진래 기자 2024-07-11 09:00:20

최근 고령 운전자 교통 사고가 잇따르면서 고령자 운전면허 반납 제도가 다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이미 서울시를 비롯해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현금이나 교통카드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고령 운전자들의 면허 반납을 유도하고 있다. 대체로 참여율이 부진한 상황에서 최근 고령자 운전사고가 잇따르자 이를 보다 강제화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듯 하다.

이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최근 고령 운전자의 높은 교통사고율이 자리한다. 지난해만 해도 65세 이상 노인운전자가 가해자인 교통사고는 거의 4만 건에 육박했다. 전체 교통사고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20%로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는 서울처럼 교통량이 많은 지역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전국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이고 있어 우려를 낳는 게 사실이다.

지자체들도 교통사고율을 낮추기 위해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지난 2019년부터 면허증을 반납하는 70살 이상 노인에게 10만 원 상당의 선불형 교통카드를 지급해 왔다. 교통카드 제공 등의 방식으로 동작구는 최고액인 34만 원을 지원하는 등 대다수 기초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고령 운전자들에게서 운전면허증을 돌려 받으려 애쓰고 있다. 

지방에서도 유사한 정책이 확산하고 있다. 경상북도는 면허 반납 연령을 노인 연령에 맞춰 65세 이상으로 이미 2019년부터 시행 중이다.  ‘경북도 교통안전 증진 조례’에 호응하는 도내 자치단체들도 대부분 10만 원에서 20만 원의 교통비를 지원하며 고령 운전자들로부터 면허증을 회수하고 있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참여율은 그다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선, 이 정도 금액으로는 운전 면허를 반납할 동가 부여가 전혀 되지 않는다. 더욱이 지원액이 일회성에 그치기 때문에 면허 반납 이듬해부터는 스스로 교통비를 해결해야 한다. 지자체 재원이 넉넉치 않은데, 매년 지원금을 줄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노인 우대 교통제도를 십분 활용하면 사실상 모든 교통수단을 무료 혹은 가장 저렴한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요즘 같은 폭염기나 장마철, 그리고 혹독한 추위에 떨어야 하는 겨울철에는 자기 교통수단이 없으면 바깥 출입 자체가 힘들기에 쉽게 면허증을 반납하기가 어렵다. 

실제로 제도 시행 후 5년 정도가 지나고 있지만 고령 면허 반납 참여율은 대부분 2~4%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인천이 지난해 6.4%로 그나마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매년 들쭉날쭉하다. 그러다 보니 무리하게 고령자 운전 면허 반납을 캠페인화 하거나 어르신 차별적 정책까지 등장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충남 홍성에서는 군수를 비롯한 군 수뇌부들이 ‘운전면허 자진 반납 약속 캠페인’을 시작했다. 부산에서는 자치경찰위원회가 75세 이상 운전자에게 ‘어르신 운전 중’이라는 표지를 차량에 부착토록 했다. 주변 차량으로 하여금 고령 운전자 차량임을 인식하고 방어 운전을 하라는 취지지만, 자칫 ‘고령운전=위험운전’이라는 인식만 키울 수 있는 비상식적 조치다.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은 강제화할 일이 아니다. 운전자 본인이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자구(自救) 차원에서 선택할 일이다. 이 제도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선 고령 운전자들이 스스로 면허를 반납할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 주는 것이 순서다. 궂이 반납을 받고 싶다면, 중앙정부와 협의해 반납 첫 해만 소액으로 지원하는 현행 지원 시스템부터 현실화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고령 운전자들이 왜 그 나이에도 운전대를 높을 수 없는지 파악하는 것이 순서다. 어르신들의 교통 편의성을 획기적으로 높여주지 못하는 한, 이 제도는 앞으로도 큰 실효성 없이 예산만 낭비하는 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지금부터라도 머리를 맞대고 대중교통 체계 개편, 지역 교통망 재정비 등을 적극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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