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와 서울시에 이어 전국단위 지자체 가운데 세 번째로 시작한 경상남도의 ‘손주돌봄수당 사업’이 사실상 실패호 끝날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맞벌이 가정의 육아 부담을 줄이고 손주를 돌볼 할아버지와 할머니에게는 경제력 지원을 하겠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하게 성과가 거의 나지 않아 안타깝다.
경남도는 올해 사업을 시작하며서 손주돌봄수당 지급 계획 인원을 400명으로 잡았다. 하지만 수당 지급이 시작된 지난 7월부터 현재까지 수급자가 고작 22명, 집행률은 5.5%에 그쳤다. 특히 경남도 18개 시·군 가운데 10개 시·군은 손주돌봄수당을 받는 사람이 아예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나 제도 자체의 실효성 논란까지 빚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사태가 이미 제도 시행 전부터 일찌감치 예견되었다는 점이다. 더욱이 그런 상황을 충분히 알고 있었음에도 대책 없이 제도만 시행해 정작 수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제대로 혜택도 돌아가지 못했다. 오히려 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았다는 점은 관계자 모두가 크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실제로 13일 경남도의회 의원들이 저조한 실적의 이유와 대책을 추궁하자 도 관계자는 “당초 설계보다 축소된 형태로 보건복지부와 사회보장협의를 하면서 지원 대상 범위가 크게 줄었다”고 밝혔다. 특히 “그래서 실효성이 없어졌다”고 고백했다. 제도 시행 전부터 안될 것을 알았다는 식의 답변에 화가 날 지경이다.
경남도는 다 자녀 같은 전제조건 없이 만 2세 아동이 있는 모든 가구, 어린이집을 이용해도 손주돌봄 시간과 중복되지 않으면 손주돌봄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수혜 대상을 넓혀 보건복지부와 다시 사회보장협의를 하는 중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올해까지 제도 도입 과정을 되짚어보면 그 마져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
경남도는 지난 2022년 12월에 ‘경남형 손주돌봄수당’을 신설을 발표하면서 ‘2023년 중 지급’을 약속했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와의 사회보장협의가 늦어지면서 2024년 예산도 제 때 확보하지 못했다. 당연히 지급이 늦춰질 수 밖에 없었고, 올해 7월이 되서야 첫 지급이 시작되었다. 예산이 없으니 적극적인 홍보도 어려웠을 것이니 성과를 낸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올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중앙정부는 이미 내년도 예산안을 짜 국회 심의를 기다리는 상황인데, 이제와서 복지부와 다시 협의를 한다니 제대로 후속 조치가 이뤄지길 기대할 수가 있겠는가. 최소한의 예산도 확보 안된 상태에서 무작정 들이댄 지방정부나, 광주시와 서울시의 경험을 통해 문제점을 알고 있었을 중앙정부 모두 크게 반성할 일이다.
이 제도는 육아의 고민을 가족 내 해법으로 해결한다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다. 당초 취지와 철학대로 사업이 잘 이뤄지려면 예산 확보 만큼이나 이것저것 끼어넣기 식으로 되어 있는 지급 전제 조건들을 현실에 맞게 개선하는 것이 순서인 듯 싶다. 아이를 맡기는 부모나 손주들을 돌보는 (외)조무모 모두가 현실 속에서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중위소득 150% 이하 두 자녀 이상을 둔 다자녀 가정에서 부모 대신 만 2세 손자녀(24∼35개월)를 돌봐주는 외·조부모’라는 대상 조건부터 손을 봐야 할 것이다. 차라리 경로당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일정 수당을 주고 아이를 돌봐달라고 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런 전향적인 사고도 없이 그저 천편일률적 탁상공론에 또 그칠 것 같아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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