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제도든 처음 도입되었을 때와 달리 계속 수정 보완을 거쳐 개선이 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보험업계에서는 피해 보상문제를 두고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적지 않아 늘 갈등의 소지를 남긴다. 많은 사람들이 싼 가격에 혜택이 커 가입한 ‘실손보험’의 중복보상을 둘러싼 논란이 그렇다.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최근 1세대 실손보험 중복 가입자에게 상급 병실료 지급 시 약관에 근거 없이 임의로 보험사가 ‘비례보상’을 적용해 보험금을 깎아선 안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예의 보험사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금융감독당국의 판단을 구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50대 여성 A씨는 D손해보험사에 1세대 실손보험을 들고, 이후 H손해보험사에서 4세대 실손보험을 가입했다고 한다. 그런데 2009년 10월부터 판매된 실손보험은 도입 초기에 표준약관이 구비되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때문에 중복 가입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할 때는 비례보상 방식을 준용해 보험사끼리 계약별 비례 분담토록 한 것이 화근이었다.
작년에 43일 동안 암 입원 치료를 받은 A씨는 1·2인실 병실 사용액 708만 원을 보험사에 청구했다. 당초 비례보상 방식대로 라면 D사가 약관상 2인실 병실요금의 절반인 258만 원을, H사는 약관상 비급여 병실요금의 절반인 354만 원을 각각 지급해야 했다. 하지만 D사가 보상책임액 중 큰 금액인 354만 원을 기준으로 비례보상 해야 한다며 149만 여원만 지급하겠다고 나서 사태가 틀어졌다.
소비자분쟁위원회가 그렇게 하면 보험 가입자인 A씨가 보험금을 적게 받는 불합리한 결과가 생긴다며 이렇게 신구 실손보험의 약관 해석이 충돌할 경우에는 ‘약관법’에 의거해 소비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해야 한다고 판정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D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버텼다. 위원회 결정은 법적 강제성이 없어 A씨로선 피해구제를 받을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문제는 실손보험 가입자가 거의 4000만 만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800만 명 가까이가 1세대 가입자인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피해구제는 늘 후순위가 되기 일쑤라는 사실이다. 이번 경우도 보험사들이 약관에 명확한 근거도 없이 보험사의 자의적 해석을 토대로 상급 병실료 차액 보험금에 임의로 비례보상을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건은 ‘수익자 우선’ 원칙보다는 ‘자사 이익 우선’의 원칙에 늘 충실하려는 보험사들의 진면목을 그대로 드러낸 사건으로 보인다. 상품 소비자를 홀대하는 이런 이기적인 영업 행태가 지금 제대로 바로잡히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A씨가 계속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실손보험을 둘러싼 보험사와 가입자 간 갈등과 분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5년에도 실손보험 약관상 자기부담금 10% 공제 규정을 거의 담합하듯이 만들었던 보험사들은 결국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약관 내용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판정을 받고서야 미지급한 자기부담금을 소비자들에게 돌려주어야 했다.
이번 경우처럼 실손보험 중복에 따른 가입자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유사한 사례에 대해 금융당국이 전수조사해 확실한 해법을 제시해 주는 것이 순서다. 그래야 실손보험이 무엇이지도 잘 모르던 시절에 기꺼이 가입해 주고 유지해 준 중·장년 1세대 실손보험 가입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서비스이자 예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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