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들을 언제든 국회로 호출하고, 기업 기밀이 담긴 서류를 무조건 공개하도록 하는 이른바 ‘국회 증언법(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지난 달 2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거대야당의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이다.
이 법이 시행되면 개인정보 보호와 영업비밀 보호를 이유로 서류 제출과 증인 출석을 거부할 수 없게 된다. 해외 출장과 질병 등 합법적인 사유가 있더라도 화상 연결 등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국회에 원격 출석해야 한다. 국정감사는 물론 중요 안건 심사와 청문회에 증인으로 채택되었으에도 불출석할 경우 동행명령을 시행할 수도 있게 된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이 법은 기업임들을 겨냥한 ‘타깃’ 법이다. 기업의 기밀 유출 우려와 함께 기업인의 경영 활동을 구속할 수 있다며 우려 때문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됐었지만, 탄핵 파문으로 거부권 행사가 무산된 틈을 타 기습처리되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저지하지 못하면 내년 3월경부터 시행이 이뤄지게 된다.
재계는 당연히 크게 우려하는 분위기다. 국회에 제시된 기업 기밀이 그대로 100% 유지될 수 없음은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기업 정보가 밖으로 유출되는 것은 물론 자칫 이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기업 기밀이 비밀보장도 안되고, 재계 총수나 최고경영자들을 툭하면 국회로 불러내 망신을 줄 것이 뻔하니 어떤 기업인이 이 법의 통과에 공포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나.
이런 현실적 문제를 차치하고라도, 이 법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국회의 율사 출신들이 발의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울 정도다. 무엇보다 이 법은 헌법상 과잉 금지 및 사생활 침해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 총수든 최고경영자든 모두 개인의 권리를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는 것인데, 이 법은 이들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공공의 적’으로 본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정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다분하다는 얘기다.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그런 지적과 함께 특히 동행명령제의 경우 매우 제한적으로 행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여당 쪽에서 나왔지만 무소불위의 거대야당을 막지 못했다고 한다. 누구 봐도 기업경영을 수시로 발목잡을 ‘나쁜 법안’임에도 일사천리로 통과된 것이다.
물론 기업들의 '원죄'도 가볍지 않다. 정치권에 빌미를 줄만한 행태를 수차례 보여왔다는 점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법 취지가 선의의 경영 활동까지 옥죄어 기업과 기업인의 발목을 잡아선 안될 것이다. 가뜩이나 장기 경제침체와 전례없는 전 세계적인 보호무역 정책으로 우리 기업인들의 사기가 떨어질대로 떨어진 상황이다.
안그래도 요즘 기업 안팎에서는 최저임금과 주 52시간제 등으로 기업의 창업과 성장이 방해받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크다. 모두가 야근과 특근을 꺼리고, 기업가 정신 같은 도전 정신은 온 데 간 데 없어졌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 창업을 할 수 있고, 어떤 기업인이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려 하겠는가.
입법기관인 국회가 잘못된 기업 관련 법안을 만들면 그 피해는 기업이나 기업인 뿐만아니라 국민과 나라 전체에 돌아간다. 정치가 힘으로 기업과 경제를 디자인하려고만 하지 말고, 현실에 맞게 기업의 애로를 함께 들으며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합리적 법안을 만드는데 더욱 주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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