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내 집 마련 엄동설한에 전세대출 규제 강화라니…

조진래 기자 2025-02-09 18:16:52

정부가 빠르면 이달부터 전세대출을 더 조이겠다고 한다. 세입자가 전세대출을 갚지 못할 때 보증기관이 대신 갚아주는 보증대출 비율을 당장 1분기 중에 100%에서 90%로 줄이는데 이어 하반기에는 세입자의 상환 능력에 따라 보증 한도에도 차등을 두겠다고 한다. 

정부의 이 같은 방침은 결국 소득이 낮거나 기존 대출이 많은 사람에게는 전세대출의 문턱을 높여, 이전보다 대출을 덜 받을 수 밖에 없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가뜩이나 내 집 마련이 어려워 전세를 전전할 수 밖에 없는데, 그 마져도 더 어렵게 하겠다는 조치니 당혹스럽다.

국토교통부가 총대를 맨 모양이다. 지금까지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세입자의 소득에 관계 없이 전세대출에 보증을 해 주었는데, 앞으로는 차주의 소득이나 기존 대출의 상환 능력을 반영해 ‘자격이 되는 사람’에게만 전세대출 보증 한도를 주도록 했다고 한다.

전세 대출이 목에 차 위험 수위에 다다랐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주택금융공사(HF)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두 보증기관의 지난해 전세대출 보증 규모가 각각 53조 원, 33조 원에 육박하는 상황이다. 은행 대출이 쉽지 않으니 보증기관으로 수요가 몰린 탓이다.

담보 없이도 전세 보증 대출이 가능했던 덕분에 은행들은 세입자가 대출금을 못 갚더라도 보증기관만 믿고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대출 영업을 해 온 결과이기도 하다. 세상에 담보 없이 대출이 가능하다는데 몰려들지 않을 대출 희망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전세대출보증의 가파른 증가세는 당연히 관리되어야 마땅하다. 2019년에 57조 원을 살짝 웃돌던 것이 5년 새 28조 원 넘게 불어나 50%나 급증했다. 특히 HUG는 17조 원 수준으로 2배 늘어 통제 불능 상태에 다다른 상황이니 어떤 식으로든 특수 처방이 필요한 상황인 것은 맞다.

하지만 지금처럼 대출 조이기에 나섰다가는 실수요자들만 시장애서 ‘팽’당하는 결과가 날 것이 불보듯 뻔하다. 전세자금대출 희망자의 대부분이 전세 살기마저 절박한 ‘무주택자’ 들이기 때문이다. 이 정책이 실수요자들의 마지막 희망까지 져버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그래서 나온다.

정부는 전세대출 증가가 전세 가격과 집값을 연쇄적으로 끌어올리고 있다는 진단을 근거로 이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다. 현재 100%인 HUG와 서울보증의 전세대출 보증 비율을 HF과 같이 90%까지 낮추고 수도권은 90% 이하로 더 낮추면 대출 규모 자체가 줄어들 것이란 기대다.

보증 한도가 축소되면 당연히 은행은 대출 자격심사를 더 깐깐하게 하고 대출금리를 더 높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하반기부터 소득과 기존 대출 상환 실적까지 고려해 보증 한도를 조정한다면, 실수요자들의 대출 가능 규모는 현격하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이 온 데는 시장의 ‘부도덕한 손’을 제대로 감시 못한 정부와 금융당국의 책임도 크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될 일이다. 그런 마당에 저소득 실수요 서민층의 이자 부담이 늘어나고, 빌라 등 상대적으로 싼 주책의 전세대출도 더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 정책을 편다는 것은 매우 균형감을 잃은 조치다.

그나마 국토부는 HUG 보증을 악용해 상환 능력 이상의 대출을 받아 대출자가 더 어려워지는 상황을 막기 위한 추가ㅏ 조치와 함께 실수요자들이 선의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다시 손보고 특히 충분한 유예기간을 두겠다고 약속했다.

큰 방향에서는 차주들의 상환 능력을 고려해 전세대출을 해주는 방향이 당연히 옳다. 하지만 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 제도를 십분 활용해 제 배 불리기만 해 온 금융권을 제대로 관리할 특단의 대책 없이 실수요 서민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겨선 안될 것이다.

전세대출 조건을 까다롭게 해 실수요 대출까지 막는 불상사를 만들어선 안될 것이다. 전세가 어려운 실수요자들이 월세로 선택을 돌릴 상황 등을 고려해 월세를 지원 보조하는 정책도 추가 대책에 포함하는 방안도 심도 있게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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