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늦은 ‘스타트업 창업’은 없다

조진래 기자 2024-02-01 08:17:38
잘 나가던 직장을 뒤로 하고 30대 후반이나 40대에 뒤늦게 창업해 위기와 실패를 딛고 성공한 늦깍이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판교에 위치한 국내 스타트업의 요람 ‘스타트업캠퍼스’ 전경. 

2022년 하반기부터 스타트업 시장은 ‘투자 혹한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뛰어난 기술력과 명확한 수익모델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시리즈 A 이상의 투자를 받은 기업들이 눈에 띈다. 특히 잘 나가던 직장을 뒤로 하고 30대 후반이나 40대에 뒤늦게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위기와 실패를 딛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늦깍이 스타트업 창업자’들이 주목받고 있다. 임성준 스타트업 전문가가 최근 <대기업을 이긴 한국의 스타트업>을 통해 그런 기업들을 소개했다. 다소 늦은 창업에도 성공적인 스토리를 써가는 혁신가들을 소개한다.

◇ 심성보 네이앤컴퍼니 대표 “세상의 모든 교통수단을 연결한다”
네이앤컴퍼니는 2019년에 설립된 모빌리티 스타트업이다. 친 환경 MaaS(모바일 서비스) 플랫폼 ‘네이버스’를 운영하며 버스와 지하철, 공유 자전거, 전동 킥보드, EV 렌터카 등 친환경 이동 수단을 통합해 최적의 교통정보를 제공한다. 앱 하나로 목적지까지 끊김 없이 통합 이동 서비스가 가능하다. 현재 전국 80여 지역에 서비스된다. 사용자들의 교통비 절감을 위해 ‘리워드 토큰’도 제공한다. 향후 통합결제 기능까지 지원할 예정이다.

창업자인 심성보 대표는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2014년에 테슬라를 처음 발굴해 투자했다. 그는 대중교통 이용자들의 최대 불만이 ‘비싼 교통비’임을 확인하곤, 국내 최초로 자동으로 대중교통 탑승 시간을 트래킹 해 2분당 1네이토큰(1원)을 제공했다. 모든 교통수단의 이동정보를 통합해 고객이 미처 알지 못했던 니즈를 충족시켜 주었다. 

네이버스의 핵심 기술은 딥 러닝을 기반으로 유저들의 이동 시간과 거리, 경로 등의 이동 패턴을 판단 및 예측하는 ‘패턴 태그’ 엔진이다. 휴대폰에서 생산되는 다양한 센서 데이터와 공공 데이터 등을 수집해 알고리즘을 실행한다. 미션 형태의 적립과 챌린지 적립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 일부 사용자는 월 9만 원 정도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그는 궁극적으로 대중교통의 무료화를 구상 중이다. 전국 18만 개 정류장에 광고를 판매해 그 수익을 다시 사용자들에게 할인 혜택 등으로 돌려줄 계획이다.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는 모빌리티를 구독형으로 전환해 MaaS의 통합을 완성하는 것이다. 

심성보 대표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처럼 자신도 10년 단위로 목표를 세워 실천 중이라고 말한다. 20대에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20개 이상 아르바이트를 해 보았고, 30대에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사업 준비를 했고, 30대 후반에 간접 창업 경험을 했고, 40대에 사업에 큰 승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친환경 MaaS 플랫폼으로 올해 해외 진출도 준비하고, 2~3년 후에는 IPO도 추진 중이다. 그는 “50대에는 소셜 벤처 투자와 연쇄 창업을 통해 사회혁신을 이루고, 60대에는 장학 재단을 만들어 전국에 미니 도서관을 설립하고 싶다”고 밝혔다.

◇ 윤경욱 스펙터 대표 “빛의 속도로 인재 검증 돕는다”
사실 윤경욱 스펙터 대표는 서른 살이 되기도 전에 창업을 해 본 사람이다. 하지만 파산이라는 처절한 실패를 경험했고, 다시 일어나 이제는 어느 기업이든 도움을 요청하는 국내 최초의 인재 검증 플랫폼 ‘스팩터’를 창업해 주목을 받고 있다. 시리즈 A 투자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일본과 싱가포르, 베트남 등에서 본격적인 글로벌 파일럿을 시작할 예정이다. 아시아 지역에서의 돌풍이 기대된다. 

스팩터는 인재 검증을 위한 평판 조회 플랫폼이다. 채용 시장의 정보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과 구직자간 매칭을 돕는다. 기존 서비스와 달리, 지원자 검증에만 초점을 맞춰 전문화했다. 헤드 헌터 등 사람에게만 의존했던 평판 조회를 큰 비용 없이 객관적인 데이터로 가능케 했다. 평판을 데이터화하고 클라우드화 함으로써 언제든 평판 조회가 가능하다. 인당 평균 4개의 평판과 수십 개 객관식 문항으로 구성된 데이터를 분석해 공통 키워드를 추출하는 방식으로 측정을 한다. 구직자가 어떤 상황에서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는지, 어떤 성향인지 알아낼 수 있다.

기업이 평판을 열람할 때마다 이용료를 받는다. 한 명 당 열람 비용은 약 3만 원. 지원자들은 전혀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다. 회사의 슬로건이 ‘10초 만에 평판 조회’일 만큼, 평판 DB 확보가 최우선 목표다. 현재 30만 개 이상의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데, 100만 개가 1차 목표다. 궁극적으로는 80억 명을 DB화 한다는 비전과 나스닥 상장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지금은 신규지원자 평판 조회에 치중하지만 곧 경력 직원에 대한 데이터도 쌓을 예정이다.

윤 대표는 컨설팅회사 ‘엑센튜어’ 출신이다. 그곳을 나와 의욕적으로 창업했던 회사가 법인 파산과 개인 파산이라는 참혹한 결말 속에 사라지는 혹독한 경험을 했다. 그 때 그가 얻은 교훈이 ‘준비가 덜 된 창업의 위험함’이었다. 윤 대표는 “준비가 안된 학생이나 예비 창업자들에게 창업을 독려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문제”라며 “‘일단 도전하라’는 말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지 준비 없이 도전하라는 말이 아니다”라고 조언한다. 


◇ 이진 엘박스 대표 “최적의 법률정보를 제공한다”
엘박스는 ‘리걸 테크(legal tech)’ 기업이다. 전국의 법원 판결문과 뉴스, 참고 문헌 등 법률 데이터 검색서비스를 제공한다. 국내 최다인 총 200만 건 이상의 판례 데이터 베이스를 기반으로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강력한 검색 기술을 갖췄다. 단순히 텍스트를 추출하는 1차 가공의 영역을 넘어, 판결문을 편집·가공해 차원이 다른 데이터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판사의 판결 성향 분석, AI 판사 판결 결과 예측 등 부가가치 높은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덕분에 국내 전체 변호사의 40% 수준인 1만 2000명의 변호사가 사용하는 서비스가 됐다. 

로스쿨이나 비영리 단체에는 자료를 무료로 제공한다. 매달 사용료를 지불하는 B2B 고객은 150곳이 넘는다. 서비스를 유료화하면서 판례 업로드에 대한 보상의 개념으로 포인트를 준다, 그러자 자신의 판례를 공유하는 변호사들이 늘어 파트너십이 더욱 확장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변호사들이 자기 시장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업무를 돕는 보완적 도구임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우 미국과 달리 판결문을 완전 공개하는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에 자칫 확정되지 않은 판결문을 올리거나 하는 위험을 막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이진 대표도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 출신이다. 당시 받던 연봉의 10분의 1 밖에 안되는 연봉이지만, 그는 변호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서비스적 가치를 제공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글로벌 리걸 테크 기업인 ‘피스컬노트’가 불명확성을 낮추는 데 주력하는 반면, 엘박스는 이미 법률 분쟁이 벌어진 상황에서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당분간은 내수 시장에 주력하겠지만 역량을 어느 정도 갖추면 해외 진출도 추진할 계획이다. 

그는 후배 창업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낙관론과 비관론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보통은 단기적인 목표에서는 비관론적인 경향이 있지만, 먼 미래를 생각하면 다시 낙관론으로 전환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 배상기 위허들링 대표 “이제 점심도 구독경제다”
위허들링은 점심 구독 서비스 ‘위잇딜라이트’를 운영하는 푸드 테크 기업이다. HACCP(식품안전관리인증)을 받은 식품 제조업체 30여 곳과 파트너십을 맺고 밥과 샐러드, 샌드위치, 면류 등 매일 2~3가지 음식을 7000원 안팎에 제공한다. 앱에서 원하는 식사를 선택하고 구매하면 다음 날 점심 시간에 원하는 곳으로 전문 배송 기사들이 직접 배달해 준다. 1인분만 주문해도 무료 배송이다. 서울 15개 구와 경기도 판교를 기반으로, 서울 전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해 가고 있다. 신규 고객의 60% 이상이 기존 고객의 추천으로 이뤄졌다.

위허들링이 스스로 평가하는 강점 중 하나가 ‘큐레이션’이다. 일반 식사를 타깃으로 시장에 진입해 B2C 구독 서비스를 하는 것은 위허들링 밖에 없다. 단순 샐러드가 아닌 일반 식사를 고객 맞춤형으로 제공하니 인기가 높다. 시장 규모는 샐러드 시장에 비해 수십, 수백 배에 이른다. 직원들이 매일 같이 먹으면서 음식 상태와 식감을 체크한다. 주요 타깃은 MZ세대 여성 직장인이다. 회원 가입 후 실제 유료 구독회원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55%에 이른다. 다들 ‘레드 오션’이라고 하는 외식시장에서 일반 식사 ‘구독’이라는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강하다. 

배상기 대표는 “아직은 오피스 밀집지역을 타깃으로 하지만 점차 베드타운 지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편리함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건강한 식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2~3년 안으로 B2B 시장도 장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인다. 이제까지는 한 달에 약 20만 식 정도를 판매했으나 올해부터는 월 60만 식 이상이 목표다. 궁극적으로는 하루 10만 구독자 확보를 꿈꾼다. 배송 시스템과 효율적인 지역 관리 체제 구축도 병행할 예정이다. 

배 대표는 은행 개발자로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뎌 10년 정도 컨설턴트로 일하다 창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풍족한 연봉 보다는 신나게 일하기를 좋아하는 자신에게 일이 맞지 않았다. 자신이 주인공이고 싶은 끼를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아마도 더 빨리 창업을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창업에 있어선, 본인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요구와 만족도가 가장 중요하다”며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조진래 기자 jjr2015@viva10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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