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이슈] 의대 정원 확대 따른 정부-의사협 ‘파열음’… 국민 건강 또 볼모화하나

이의현 기자 2024-02-07 15:12:30

의대 입학 정원 확대 문제로 불거진 정부와 의사협회 간 파열음이 예상보다 커질 조짐이다. 강행 신속처리를 공언하는 정부와 총파업으로 맞서려는 의사협회 간 간극을 좁힐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자칫 4년 여 전처럼 국민 건강을 볼모로 한 의료대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강대 강 대치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중간 지점의 조율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의사협회 “의대증원 효과 없어… 필수의료에 한의사 활용하면 돼”
대한한의사협회는 정부의 2025년 의대 입학정원 2000명 확대 방침에 대해 7일 보도자료를 내고 “지금 의대 입학정원을 2000명 늘려도 10년 뒤에나 공급이 시작된다”며 “정부 대책은 당장의 의료인력 배치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경한 입장을 내보였다. 

특히 정부가 강조하는 ‘필수의료 분야’ 대응 문제에 대해서도 정부 방침을 정면 반박했다. 이들은 “필수의료 분야 정책에 한의사 참여를 확대하고 지역의사제에 한의사를 포함해 미용 의료 분야 특별위원회에 한의사 참여를 보장하고 시술 범위를 모든 의료인으로 확대해달라”고 요구했다. 

내년부터 매년 2000명씩 최소 5년간 늘려 2035년까지 의사 인력을 1만명 확충하겠다는 정부방침에 대해서도 “한국의 인구증가율을 고려하면 2035년 이후 인구 감소는 자명하다”며 “정원을 늘려 의사 인력 수급을 조절하는 정책은 발등의 불을 끄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의사협회 측은 “의사 정원 확대에 반대해 온 의사협회 소속 의사들은 물론, 대학에서 수련 중인 학생들도 정부 방침이 부당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으며 특히 당초 정부안에 공감했던 대학 측에서도 2000명이라는 숫자에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이라며 정부 안의 철회를 강력히 요청했다. 이들은 정부안이 철회되지 않을 경우 설 이후 전국적인 파업에 들어갈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 전공의단체도 “의대증원 규모 지나쳐… 모든 대응책 강구”
전공의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도 전날 정부가 발표한 의대 증원 규모인 2000이 너무 과한 규모라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박 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7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정부가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2000명 증원을 내질렀다”며 “정부의 일방적인 의대 증원과 필수의료 패키지 발표, 보건복지부의 (집단행동 금지)명령 등 작금의 사태에 유감”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그동안 의료현안협의체에서 정확한 의료인력 수급 추계 필요성을 반복적으로 얘기했지만, 아무런 진전이 없었다”면서 “미국처럼 정부와 의료계가 함께 참여해 의사 인력 수급을 계획하는 위원회를 설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대 증원을 통해 낙수 효과를 기대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전문의 중심 의료 체계 구축·의대 교수 증원·경증 환자 상급 병원 의료 이용 제한·불가항력적인 의료 사고 법적 부담 완화·필수 의료 등 의료 수가 정상화·전공의 근무 시간 단축·전공의 교육 개선이 우선 시행되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 강경대응 방침에 비상진료체계 점검
보건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의 총파업 등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대비하기 위해 다각적인 대책을 추진하기로 헸다. 7일 당장 17개 시도 보건국장 회의를 열어 비상 진료체계를 점검하는 한편 의사 집단행동 동향과 설 명절 연휴 응급실 운영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정부는 의사 집단행동에 따른 후속 대책으로 지자체별 비상진료대책 수립과 비상진료대책상황실 설치 등을 요청했다. 이를 통해 비상 진료 기관 현황 등 정보수집 체계를 마련하는 한편 응급실이나 중환자실 등 필수의료에 대한 24시간 비상진료체계를 가동할 방침이다.

앞서 복지부는 의사 집단행동에 대비하기 위해 보건의료 위기 단계를 ‘경계’ 단계로 상향 발령하고 ‘의사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를 6일부터 가동중이다. 

전병왕 보건의료정책실장은 “각 지자체와 복지부 간 유기적인 협업을 통해 필수의료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만전을 기울이도록 하겠다”면서 “정부는 의사단체의 불법 집단행동 등에 대해선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의료개혁 의지가 남다른 만큼, 강대 강 대치가 쉽게 풀리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 해법은 대화 재개 뿐
이해 당사자 간 중간 타협점을 찾으려면 현재로선 정부 측이 수정안을 제시하는 것 외에는 특별한 방법이 없어 보인다는 게 안팎의 시각이다. 당초 2000명 정도까지는 증원하지 않을 것이란 기대를 져버리고 정부가 예상 범위의 최대치를 발표한 만큼, 한 두 차례 더 협의회에서 의견을 조율해 적정 수준의 증원 규모를 도출해 내는 것이 현재로선 최선이라는 것이다.

현재 의사단체에서는 표면적으로는 의대 입학 정원 동결을 주장하고 있지만, 전공의 단체 등에서는 수백 명 수준의 증원 정도면 논의를 재개할 의시가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도 의사 집단 행동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데 부담을 갖고 있어, 강경 일변도의 정책에서 한 발 물러나 중간 지대 쯤에서 의견 조율의 기회를 갖는 것이 차선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서로의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 만큼, 국민 건강을 볼모로 서로의 주장만 내세우고 상대가 수그러 들어오길 기대하기 보다 한 발 더 나아가 테이블에 마주 앉는 노력이 긴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이의현 기자 yhlee@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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