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이슈] 전공의들이 떠난 병원의 고령·중증환자들 누구 지키나

이의현 기자 2024-02-20 08:54:19
사진=연합뉴스

의료 현장에서 사실상 핵심 중추 역할을 하는 전공의들이 속속 병원을 떠나면서 우려했던 ‘의료대란’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른바 서울의 ‘빅5’ 대형병원을 비롯해 전국 병원의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후 현장 근무를 중단함에 따라 예정되어 있던 수술이 연기되거나 취소되는 등 최악의 의료 공백 사태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정부가 국민의 건강과 생명과 볼모로 한 불법 파업에 가담하는 의료진은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그 어느 때보다 강경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진료유지명령’을 발령했지만 의사 없는 병실에서 환자들과 가족들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 전공의 빠지면서 ‘의료대란’ 현실로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서를 제출하고 출근과 근무를 거부함에 따라 의료진 공백이 현실화되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아산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빅5’ 병원의 전공의들이 20일 오전 6시부터 근무를 중단하는 등 어제와 오늘까지 모두 2000명 안팎의 ‘빅5’ 소속 전공의들이 사직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외에도 분당서울대병원과 아주대병원 등에서도 100여 명의 전공의들이 사의를 표명하는 등 파업에 동참하는 전공의 숫자가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전공의가 전국적으로 1만 3000명을 웃도는 상황에서 전체의 3분의 1 가량이 이틀 사이에 의료 현장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전공의들은 20일 정오에 서울 용산 대한의사협회 회관에서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향후 대응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현재로선 극적인 파업 철회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오히려 맞대응 수위를 높여야 한다는 내부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 의료 현장 피해 속출
전공의들이 빠져 나가면서 그 피해는 온전히 환자들과 그 가족들에 미치고 있다. 전공의들이 응급·당직 체계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더 심각한 의료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특히 마취를 맡은 전공의들이 이탈하면서 대부분의 수술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현재로선 간호사들이 환자 케어에 발만 동동 구르는 형국이다.

수술을 앞둔 환자들이 가장 피해를 호소하고 있다. 정형외과와 산부인과 등에서는 긴급 수술이 요하는 상황에서 전공의들이 메스를 내려 놓자 줄줄이 수술이 연기되고 취소되고 있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 수술을 할 것을 권하는 병원도 있지만, 그 동안 그 곳에서 치료를 받아 자신을 가장 잘 아는 병원을 두고 다른 곳에 수술을 맡기기가 쉽지 않다. 더욱이 파업이 언제 끝날 지 모르기에 섣불리 결정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한 임산부는 “제왕절개 수술을 받으려 준비하고 있었는데 수술 일정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해 기다리고 있다”면서 “계속 진통을 참으면서 기다려야 하는지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디스크 수술을 위해 대기중이라는 다른 환자의 가족은 “의사 선생님들이 꼭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 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전공의가 빠진 병원들, 일정 조정에 목이 타
전공의들이 빠져나간 병원들은 일단 의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준비 중이다. 당장 급하지 않은 수술은 가능한 시한까지 미루고,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다른 병원으로 소개장을 써주는 식으로 일단 대응하고 있다. 

전공의들이 가장 먼저 빠져나간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해 대다수 병원들이 진료 과별로 수술 스케줄 조정을 긴급 공지하고 환자들의 양해를 구하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대형 병원에서는 이미 마취통증 전공의 부재 속에 수술을 보조할 전공의가 없어, 예정된 수술의 절반 이상이 미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당장은 위중하고 위급한 수술 외에는 시행이 어려운 처지다.

현실적으로 ‘대체 인력’을 가동하기 힘든 상황이라 사실상 손을 놓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대형 병원 관계자는 “아직은 초기라 최소한의 인력으로 가능한 이런저런 긴급 대책을 써 보겠지만, 의료 공백 사태가 일주일 이상 지속될 경우 사실상 병원의 모든 수술과 진료가 올 스톱될 수도 있을 것”이라며 우려를 내보였다. 

◇ 응급·중증·고령환자 케어는 누가
정부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공공병원과 군 병원 의료 인력을 총동원하고 비대면 진료를 확대하는 등의 긴급 조치를 시행한다는 방침이지만, 현장의 의료 인력 공백은 당장 큰 차질을 빚어내고 있다. 

위급한 응급환자나 중증·고령의 환자들이 머무는 병실을 어떻게 케어할 것인지도 큰 과제다. 이제까지는 전공의들이 큰 역할을 해 왔으나 어제 오늘부터는 온전히 전문의와 간호사들 몫이 되었다. 

수도권 중형 병원의 한 간호사는 “고령의 중중 환자들을 그동안은 전공의들이 담당해 왔는데 이번 사태로 간호사들의 업무 부담이 배가될 것 같다”면서 “이러다가 중증 고령 환자를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 지 가늠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간호사들에게 과중한 부하가 걸릴 경우 이들 역시 집단행동에 나서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는 실정이다.

뇌졸중과 다발성 패혈증으로 입원 중인 노모를 돌보고 있다는 김영환(가명) 씨는 “환자를 볼모로 한 파업을 결행하려는 의사들이나, 일방적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밀어 부치려는 정부 모두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며 “그 어떤 주장보다 ‘환자’가 최우선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정부는 의료계의 집단 행동에는 강경하게 대응하겠지만 여전히 의료계와 대화할 용의가 있다며 의사단체들의 집단행동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양 측이 환자를 고려하고 의료 발전을 위한 건설적인 방안을 도출해 낼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이의현·박성훈 기자 yhlee@viva2080.com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