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이슈] 사상 첫 재난경보 ‘심각’ 단계 발령… 의료 시스템 전면 개편 신호탄 되나

이의현 기자 2024-02-23 19:59:32
사진=연합뉴스

의대 입학정원 증원에 반발하는 의료계의 집단 행동에 맞서 정부가 23일 오전 8시를 기해 보건의료 재난경보 단계를 기존 ‘경계’에서 처음으로 최상위인 ‘심각’ 단계로 상향조정했다. 긴급히 비대면 진료도 전면 허용키로 했다. 이를 계기로 의사들의 집단 파업이 멈출 수 있을 지, 나아가 국내 의료 시스템에 일대 파괴적 혁신 바람이 일지 주목된다.

◇ 전공의들 집단 가담에 정부 “재난경고 ‘심각’으로 격상” 맞불
23일 현재 1만 명에 가까운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직서가 이직 수리되지는 않았으나 이들 가운데 70% 이상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의료 현장에서의 진료 및 수술 공백은 불가피한 현실이 되었다.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는 수술 지연, 진료 거절, 진료예약 취소, 입원 지연 등의 신고와 접수가 쇄도하고 있다.

이 같은 환자 피해사례는 이미 200건을 넘어 계속 증가 추세다. 박민수 복지부 차관은 “중증·응급진료의 핵심인 상급병원에서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30∼40% 수준인데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가 전체의 70%를 넘었기에 상당한 위기라고 판단했다”면서 “정부는 진료공백 장기화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진료 추가 대책을 수립하고, 행정적·재정적 지원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날도 정례 브리핑을 통해 의대 증원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면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부당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특히 2021년 현재 우리의 의사 1인당 연간 진료 건수는 6113건에 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788건의 3배 이상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런 과도한 업무량에 비해 전공의 주당 근무시간은 2015년 92.4시간에서 2022년 77.7시간으로 줄어드는 등 의사 근로시간은 오히려 줄어 의사가 더 필요하다는 설명이었다.

의사들의 고령화도 의사 수 확충의 큰 이유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의사는 은퇴 연령이 정해져 있지 않아 의사 고령화가 문제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것은 사실과 크게 다르다”며 “2022년 기준 70세 이상 고령 의사 8485명의 대부분인 78.5%가 의원이나 요양병원에서 근무 중이며, 중증 환자 진료를 담당하는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근무 비율은 18.5%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 마지못해 동참하는 의대생들?
교육부가 이미 대학들에 공문을 보내 3월 4일까지 내년 의대 정원 증원 규모를 신청해 줄 것을 요청한 상황에서, 의사들의 집단 행동에 동참해 휴학을 신청한 전국 의대생들도 1만 2000명을 넘어섰다. 전체 재학생의 60%를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대학들의 적극적인 설득으로 그 가운데 300명 이상은 휴학계를 철회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파업 참여 동력은 갈수록 동력이 떨어지는 모습이다. 당장 휴학 신청 건수가 줄어드는 양상이다. 실제로 S대 의대에 재학중인 한 학생은 “집단행동에 동참하는 인원을 실시간으로 확인 중이다”라며 “적극적으로 집단행동에 동참하려 하기 보다는 사태 추이를 지켜보며, 사실은 사태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더 크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휴학계를 제출한 학생들 가운데 휴학이 허가된 것은 집단행동과 무관한 50건 안팎에 불과했다. 수업 거부가 확인된 의대도 11개 정도 였는데, 학교에서는 학생 면담 등을 통해 정상적인 학사 운영 노력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대 학칙상 대부분의 경우 수업일수의 3분의 1 또는 4분의 1 이상 결석 시 유급 처리가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교육부는 고등교육법에 따라 해당 대학에 시정 조치 등을 할 수 있다. 

◇ 비대면 진료 확대… 원격진료 도입의 지름길될까
전공의 이탈이 장기화 조짐을 보임에 따라 정부는 의료 공백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23일부터 초진환자와 병원급에 대해 비대면진료를 전면 확대해 국민들이 일반진료를 더 편하게 받도록 했다. 이제까지의 재진과 의원 중심이라는 원칙을 한시적으로 없앤 것이다. 이에 따라 의료취약지가 아니더라도 초진과 평일, 병원까지도 비대면 진료가 가능해졌다. 

전문가들은 병원급 이상의 비대면 진료가 대폭 확대된다는 점에서 향후 원격진료의 전면 허용 쪽으로 가닥이 잡힐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전까지는 병원급 이상에서는 재진 환자 가운데 병원급 진료가 불가피한 희귀질환자(1년 이내), 수술·치료 후 지속적인 관리(30일 이내)가 필요한 환자들만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비록 이번 조치에서 비대면 진료의 대상을 ‘중증이나 응급 환자가 아닌 일반 환자’로 제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제한적이긴 하지만 이번 의료계 파업이 자칫 원격 진료의 명분을 주어 오히려 의사 집단에 부메랑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의료계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의사 집단의 집단행동이 장기화할수록 그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의료계가 극력하게 반대하는 의료정책을 전면 확대시행함으로써 집단행동의 동력을 떨어트리려는 ‘압박’의 수단이기는 하지만, 의료 취약지역과 도심 대병원까지 모두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다는 자체가 의사들에게는 심각한 문제다. 집단행동을 계속할 경우 의료계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정책으로 대응하겠다는 정부의 강경한 입장이 읽히는 대목이다.

 이의현 기자 yhlee@viva2080.com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