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이슈] 대통령-전공의 대표 만남, 소득 없어 … 여전히 자기 입장만 감싸는 이해당사자들

이의현 기자 2024-04-05 21:23:39
출구가 보이지 않은 채 의료 공백 사태가 장기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4일 어렵게 윤석열 대통령과 전공의 대표인 박단 비상대책위원장이 만나 의료 공백 장기화 사태의 해법을 모색했다. 하지만 오히려 의료계에선 탄핵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간국을 좁히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비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정부는 여전히 2000명 증원에서 양보할 의미가 없어 보이고, 의료계는 여전히 전면 백지화 요구를 굽히지 않는 등 자기 입장만 감싸며 한 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의대 교수들은 정부의 2000명 의대 정원 방침이 교육의 자주성 등 기본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까지 분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형 병원들은 경영난 악화에 의사들도 진료 한계에 봉착했다며 특단의 해결책 마련을 정부와 의료계에 재차 촉구하고 있다. 국민들은 여전히 자기 입장만 고수하는 정부와 의료계에 배신감을 느낀다는 분위기다.

◇ 대통령과의 만남도 별무 성과… 입장 차만 확인하려 만났나
윤석열 대통령과 전공의 단체 대표인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의 대화가 당초의 기대와 달리 서로의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아니냐는 우려만 증폭시키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전공의와 대화의 ‘물꼬’를 텄다”고 자평하지만, 의료계는 대화에서 소득이 전혀 없었으며, 만남 자체에도 의미를 두지 않는 분위기다. “그럴 거면 박 위원장이 굳이 무엇하러 대통령과 만났냐”는 전공의들의 불만만 증폭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박 위원장 탄핵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 해법 도출의 가능성에 잠시나마 기대를 걸었던 국민들도 두 사람의 만남 이후 후속 보도가 나오지 않고 서로 평행선만 달리는 코멘트들이 나오자 허탈해 하는 분위기다. 서울시 양천구의 김석구(가명) 씨는 “양 측이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마음이라면, 그런 만남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국민들이 보기에는 양 측 모두 일말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 정부-의료계 대화 이어갈 수 있을까
의정 대화의 몰꼬가 트였다는 정부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박단 전공의 부상대책위원장에 대한 탄핵 요구까지 나오는 등 의료계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사진=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는 5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윤 대통령과 박 위원장의 면담과 관련해 “정부는 전공의와 이제 막 대화의 물꼬를 텄다”며 정부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의료계와 대화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이전에도 의료계가 통일된 입장을 갖고 대화에 임한다면 충분히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얘기했지만, 정작 의료계는 이번 만남을 계기로 내부 갈등만 확산되는 모양새다.

두 사람의 만남에서 도대체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려지지 않는 상황에 불만이 증폭되면서 “대통령에게 설득당한 것은 아니냐”는 볼멘 소리도 나오는 상황이다. 전공의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고 대통령을 만난 것부터 문제 삼는 격앙된 분위기도 역력하다. 전공의들 사이에서 박 위원장 탄핵 불가피론이 나오는 이유다. 임현택 차기 대한의사협회 회장 당선인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내부의 적’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비판했다.

물론 전공의 일각에서는 “극한의 위기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박 위원장의 충정을 이해해 줘야 한다”는 옹호론도 있지만, 대통령과의 대화 내용이 상세하게 전해지지 않는 상황에서 비판론이 더 우세한 분위기다. 

◇ 이대로 정부의 ‘의료개혁’ 밀어붙이기 가능할까 
의료계 내에서 다소 중립적인 입장을 가졌다는 응급의료과 의사 손상훈(가명) 씨는 “정부가 사안을 다소 안이하게 처리하려 한 부분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의사 파업에 반대하는 국민들이 월등히 많다는 사실 하나만 믿고, 사태가 너무 장기화되도록 방치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은 이제까지 의사 파업을 비난했던 국민들도 ‘피로감’을 느끼면서 정부와 의료계 모두를 싸잡아 비난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고 말했다. 

대다수 전공의들도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에 함몰된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한 서울 지역 전공의는 ‘유연함의 결핍’이라고 정부를 비판했다. 전공의들도 겉으로는 ‘원점 재논의’를 주장하지만 사실은 2000명에서 어느 정도 합리적인 수준의 하향 제시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크다는 것이다. 그는 “500명 정도 증원 수를 줄인다고 뭐가 큰 문제가 되겠느냐”고 따졌다. 

의대 교수들도 전체적으로 정부가 의대 증원 2000명에 대해 조금이라도 유연한 입장을 보이면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장기 교착 상태에 빠질 것이 뻔해 보이는 현 상황에서는, 의·정 대화의 복원을 유일한 전제 조건은 의대 증원 수에 대한 유연한 대응이라고 한 목소리다. 정부가 지금처럼 의사 정원 수 ‘번복’을 ‘의료개혁 후퇴’로 생각하는 한 해법은 어렵다는 것이다.

문제는 정부의 스탠스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이 “정부는 ‘유연하고 포용적’이면서도 ‘원칙을 지키는’ 흔들림 없는 자세로 의료개혁을 추진해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말한 것이 혼란스럽다고 말하는 의료계 인사들이 많다. ‘유연함’과 ‘흔들림 없는’ 이라는 이해상충하는 두 단어가 지금의 무 원칙 한 정부의 정책 대응 분위기를 설명해 주고 있다는 것이다.

◇ 환자 피해만 확산… 희귀난치환자, 빅5 병원장에 “의사들 잡아달라”
의정 갈등이 심화하고 장기화하면서 헛걸음하는 환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4일 오후 6시 현재 기준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의 총 상담 건수는 37건이며, 이 가운데 피해신고가 접수된 것이 5건이다. 지난달 19일부터 이달 4일까지 누적 상담 수는 2135건이며, 이 가운데 623건은 피해신고서가 실제 접수된 사례다. 피해신고 중에서는 수술 지연이 417건으로 가장 많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한 환자가 ‘빅5’ 병원장들에 보낸 편지를 공개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그는 “질환의 특성상 동일질환의 환자 수가 적기 때문에 1·2차 의료기관에서는 가벼운 증상치료나 처치조차 받을 수 없어 대부분의 환자는 희귀질환 진료 경험이 많은 ‘빅5’ 병원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며 “병원장들이 각 병원 의사 선생님들을 붙잡고 (남아있을 수 있게) 설득해달라”고 호소했다. 

전공의들이 현장을 떠나면서 환자가 급감하자 병원들도 심각한 타격을 입고 있다. 지난 해 75%에 달했던 수련병원 50곳 병원의 전체 병상 가동률도 현재는 56%대로 크게 떨어졌다. 전공의들이 집단사직한 지난 2월 마지막 2주부터 지난달까지 50곳 수련병원의 전체 수입액도 2조 2407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조 6645억 원)보다 무려 4238억 원 가량이나 줄었다. 병원당 평균 85억 원 가까이가 줄어든 것이다. 

 이의현·박성훈 기자 yhlee@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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