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이슈] 의대 증원 논란 ‘점입가경’… 원칙 없는 정부 정책에 의사 집단이기주의도 위험수위

이의현 기자 2024-04-22 15:51:03
25일 오전 서울 고려대학교 안암병원에서 열린 ‘고려대학교 의료원 교수 총회’에서 교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의대 증원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정부는 원칙을 스스로 허무는 대학 자율 조정안으로 또 다시 비판에 직면했고, 의료계는 ‘증원 백지화’만을 고집하며 집단이기주의가 위험수위에 다다른 상황이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간극에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국민들만 심하게 속 앓이를 하고 있다.

◇ 정부, 원칙과 융통성 없는 정책 수정에 ‘빈축’
정부는 의료개혁 의지에 전혀 흔들림이 없다고 누차 강조해 왔다. 의대 증원의 대학 자율 조정이나 의료개혁특별원회 출범 등 유연성을 발휘하고 있으나  의료계가 주장하는 의대 증원 원점 재논의나 1년 유예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예의 과학적 근거와 합리적 논리에 기반한 통일된 대안을 의료계에 거듭 촉구하고 있다.

정부는 당초 2000명 증원에서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다가 최근 비 수도권 국립대 총장의 건의를 수용해 내년도에 한해 증원 인원을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한 발 물러섰다. 하지만 타이밍을 이미 놓친 뒤였다. 이왕 수정할 것이었다면 늦어도 지난 주쯤에 수정안을 제시하고 대화에 나섰어야 했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의료개혁특위를 출범시켜 의료계가 요구해온 의료인력 수급현황의 주기적 검토방안과 필수의료 투자방향 등 의료체계 혁신을 위한 개혁과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특위 위원장에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이 내정되는 등 얼개를 짜고는 있으나 정작 의료계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상황에서 추진되는 것이어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 의사들은 여전히 대화 거부… ‘집단유급’ 위기 학생들도 동참
정부의 유화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의료계는 꿈쩍도 않고 있다. 마냥 ‘의대증원 백지화’만 고수할 뿐이다. 정부의 대학별 의대 증원 자율 조정과 의료개혁특위 참여 제안을 사실상 모두 거부한 것이다. 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아니기에 받아들일 수 없다”는 내용의 성명으로 맞서고 있다. 의료개혁특위 역시 명백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정부의 적절한 조치가 없을 경우, 예정대로 4월 25일부터 교수 사직이 진행될 것이라며 엄포를 놓고 있다. 그나마 25일 이전에 정부가 진정성 있는 대화의 장을 만들어 주갈 기대하는 분위기다. 의사들은 오는 25일로 사직 의사를 밝힌 지 1개월이 지나 사직의 효력이 발생하게 되기 때문에 정말로 초유의 사태가 빚어질 수 있는 분위기다. 

의대생 집단 유급 사태도 도저히 막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1일 현재 전국 40개 의대의 누적 유효 휴학 신청 건수는 1만 626건에 이른다. 전국 의대 재학생의 거의 60%에 육박하는 규모다. 계속 수업 거부가 이어질 경우, 수업일수 부족으로 F 학점이 불가피해 집단 유급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의대는 통상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을 받으면 유급으로 처리된다.

이런 상황에서 의대 증권에 반대하는 의대생들은 자기 대학의 총장들을 상대로 내년 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대학 입학 전형 시행계획 변경 금지 가처분 신청’을 잇달아 낼 기세다. 22일 충북대를 시작으로 곧 전국 의과 대학들의 신청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박민 복지부 차관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까지 예고하는 등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 환자들은 진료 정상화 촉구 “사회적 대화 나서야”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는 중증환자들은 진료 조기 정상화를 연일 촉구하고 있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과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22일 국회 앞에서 진료 정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환자들은 생명을 위협을 받고, 노동자들은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면서 의사단체와 정부, 국회에 대해 사태 해결을 위한 대화에 나설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들은 의사단체에 대해 “의료개혁을 논의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체 참여를 거부한 채 의사단체와 정부끼리 1대1 대화를 하자는 것은 특권적 발상”이라고 매도했다. 이어 “의료개혁은 의사들만의 전유물도 특권도 아니다”라며 의사 단체들이 대한민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적 대화에 참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에는 “민심을 바로 보라”고 비판했다. 4월 10일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이 곧 ‘국정쇄신’이었는데, 대화를 통한 해법을 마련하지 못한 채 강대강 대치로 사태를 장기화하는 것이야말로 국정쇄신 대상이라고 맹렬하게 공격했다. 이어 신입생 수시모집 요강이 확정되는 5월 말까지 책임지고 의대 증원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국회에 대해서도 일침을 놓치지 않았다. 이들은 “정부와 의사단체에 책임을 떠넘긴 채 국회가 허송세월할 때가 아니다”라며 “국민들을 대표해 의사들을 직접 만나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설득하고, 사회적 대화를 성사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 경찰 “복귀하려는 전임의·전공의 방해해선 안돼”
이런 와중에 의사·의대생 온라인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는 현업에 복귀하려는 전공의들의 명단이 담긴 ‘전공의 블랙리스트’가 올라와 논란을 빚고 있다. 경찰이 이를 비판하는 관련 게시글에 대해 수사 계획을 밝히는 등 사태는 점점 꼬여가고 있다. 부적절한 글에 대해선 수사가 이뤄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실제로 경찰은 메디스태프에 대한 압수수색 등 관련 조사를 시작한 상태다.

경찰은 또 전공의 집단사직을 부추긴 혐의 등으로 대한의사협회 간부들이 대거 고발된 사건과 관련해서는 “자료 분석이나 참고인 조사 등 필요한 수사가 있으면 정상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공의들을 직접 수사할 계획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경찰은 피고발인 신분으로 의협 전현직 간부 소환 조사한 바 있다. 

 이의현·박성훈 기자 yhlee@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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