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 수로왕릉을 다녀와서

조진래 기자 2024-12-09 09:06:29

서울 도봉문화원에서 경남 김해 내릉(수로왕릉)을 다녀왔다. 내릉 정문은 맞배지붕에 홍살 삼문으로 규모가 웅장하다. 앞쪽은 콩 담장으로 근래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뒤쪽은 거무스름한 자연석으로 쌓아 당시 것으로 보인다.

왕릉 앞에 가락국 수로왕릉이란 비석과 향로석에는 이끼가 많이 끼어 당시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릉 양쪽에 문인석 무인석 마양호석(馬羊虎石)이 지키고 서 있다. 경내에는 시위를 모신 숭선전과 안향각 전사청 제기고 숭재 동재 서재 신도비각 숭화문 등이 있다.

수로왕은 가락국 곧 금관가야의 제1대 왕이자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무덤의 높이가 5m나 되는 대단한 크기다. 당시 왕이 죽으면 주위에서 함께 생활하던 사람들을 같이 묻는 순장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왕을 중앙에 묻고 주위에 순장으로 왕릉이 크게 만들어졌을 것이다. 

무덤이 지금처럼 갖추게 된 것은 선조 때 영남 관찰사이며 수로왕의 후손인 김허수가 대대적으로 개축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도굴당했다고 하니 안타깝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나라가 없던 시절 가락지역에 ‘하늘에서 붉은 보자기로 싼 금빛 그릇이 내려와 그 속에 태양처럼 둥근 황금색 알이 6개 들어있었다고 한다. 12일 뒤에 그 알에서 남자 아이가 차례로 태어났다. 그 중 제일 먼저 나왔기에 이름을 수로(首露)라 했다. 

주민들은 수로를 금관가야 왕으로 모셨고, 다른 남아들은 각각 5촌 가야의 왕이 되었다고 한다.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단군신화처럼 믿어야 한다. 

수로는 천신의 명을 받아 바다를 건너온 야유타국의 왕녀 허황옥을 왕비로 맞아 아들을 낳아 거등왕이 대를 이었다고 한다. 김해 김씨 후손들은 매년 음력 3월 15일과 9월 15일 두 차례 제사를 크게 지낸다. 지역주민들도 많이 참여한다고 하니 참여를 권하고 싶다. 
 

정운일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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