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 열차 여행의 묘미

조진래 기자 2025-01-14 09:07:52

 
임병량 명예기자

열차 여행은 예약을 해야 가능하다. 한 달 전에 예약했지만 정원이 마감되어 대기자 순번을 받았다.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출발 며칠 전에야 연락이 왔다. 국악와인열차 여행으로 태백과 철암, 분천, 영주역까지 왕복한 눈꽃 축제 프로그램이었다. J와 K는 서울역에서, 나는 수원역에서 탑승하기로 했다.

국악와인열차는 세 부류로 나뉘었다. 국악 소리 한마당, 신나는 레크레이션, 일반 칸이다. 우리는 일반 칸으로 탐승했다. 일반실은 커피숍처럼 꾸며져 있다. 잔잔한 노래가 감미롭게 흐르고, 테이블에는 간식, 레드·화이트 와인 두 병과 와인 잔이 세팅되었다. 이 만한 분위기에 고향 후배와 함께 한 여행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아무나 누릴 수 없는 나들이에 감사가 절로 나온다.

우리는 옥과중학교에서 알게 된 후 50여 년의 세월을 보냈다. 교복 입고 다녔던 소년이 칠십대 노년이 되어 얼굴과 이마에는 주름이, 머리는 반백이다. 어린 시절 소풍날 아침에 설레던 마음이 되살아나면 좋으련만, 감정도 세월 따라 늙어버린 모양이다. 무딘 감정을 달래며 마주 앉아 와인잔을 채웠다. 쨍 소리 나게 부딪친 소리가 건강과 희망의 합창으로 들리면서 추억의 보따리를 풀었다.

‘환상선 백두대간 협곡 구간’의 자연을 두 눈에 담는다. 오지마을의 간이역과 겨울 정취와 낭만, 좁디좁은 협곡 사이로 빠져나와 아래는 절벽, 위로는 바위산이 우뚝 선 자연을 감상한다. 환상의 눈꽃 열차는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달린다. 최백호 가수 ‘낭만을 위하여’ 노래가 흐른다. 와인 한 잔이 노래와 함께 온몸에 퍼진다. 덩치 큰 여성이 다가와 레드와인 한 잔을 요청해 말 없이 채워줬다.

분위기가 좋으면 모두가 한편이다. 그 쪽은 술병이 모두 비어 있다. 우리는 술이 약해 아직도 한 병 이상이 남았으니 부러웠으리라. 낯모른 사람도 술이 들어가면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람처럼 가까워진다. 칠십 줄을 훌쩍 넘겼지만 술이 약해서인지 처음 만나면 항상 서먹서먹하며 낯가림한다. 어쩜 그 중년 여성은 말을 섞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여행은 행복 에너지뿐만 아니라 건강 호르몬을 생성하는 마력이다. 가까운 사람과 여행을 즐기면 건강과 행복이 따라온다고 하지 않던가. 태백역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다. 다섯 시간 이상 달려왔지만 피곤함보다 행복한 얼굴이다. 모두가 밝은 얼굴과 환한 미소다. 여행객이 정다운 이웃 식구처럼 느껴온다. 기차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다.

관광은 태백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황지연못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낙동강의 근원지로 알려졌다. 표지석에는 상지(上池), 중지(中池), 하지(下池)로 구분해 중지는 ‘황부자의 방앗간 터’라고 한다. 하루 5000톤의 물이 용출되어 낙동강에 합류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옆 광장에는 제32회 태백산 눈축제 조형물이 포토 존이다. 매서운 강한 바람 속에서도 여기저기서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철암은 탄광의 역사가 숨 쉬는 곳이다. 태백 파독 광부 기념관에는 독일에서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었다. 춥고 배고픈 시절, 외화벌이를 위해 독일로 떠난 광부와 간호사 2만 1000여 명이 조국의 경제 발전에 초석을 일궈 낸 경제 역군의 사연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들의 피와 땀의 대가를 잊었는가. 우리는 탄핵 정국으로 하루가 편한 날이 없다.

세 번째 목적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산타 크리스마스 마을 ‘분천역’이다. 사계절 내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조명과 장식이 한 눈에 들어온다. 관광객들이 좋은 위치를 찾아다니며 사진에 담는다. ‘하얀 눈이 쌓였다면…’ 하는 아쉬움이 스친다. 아담한 대기실은 몇 명이 들어가도 가득 찬다. 백두대간 협곡열차 운행 노선이 눈에 들어온다.

영주역에 도착하니 어두컴컴하다. 농민들은 역 앞에 천막 치고 탄핵 규탄 집회가 안타깝고 슬프다. 추위에 생업을 포기하고 집회에 가담하고 있으니, 언제나 일상을 되찾을까 마음이 아프다. 영주의 전통시장은 캄캄하고 썰렁하다. 몇 군데 전깃불이 켜진 가게는 노인 혼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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