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 ‘역전의 묘미’

조진래 기자 2025-09-05 08:10:03


손현석 명예기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역전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겨 하는 이유도 바로 경기마다 이런 역전의 묘미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권투선수 중 가장 깊게 남아 있는 선수는 홍수환 선수일 것이다. 홍 선수는 1977년 11월 27일 WBA에서 신설한 Jr.페더급 챔피언 결정전에 나가 파나마의 헥토르 카라스키야에게 2라운드에서만 4번이나 다운을 당했다. 온 국민이 모두 졌다고 생각한 순간, 그는 3라운드에서 역전 KO승을 거두며 4전 5기의 신화를 썼다.

만일 홍수환이 무난히 판정승을 거두거나 KO로 승리했다면 축하는 하겠지만 이런 감동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다 졌다고 생각했던 경기를 뒤집고 역전했기 때문에 이렇게 감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전의 묘미다.

지금 미국은 축구선수 손흥민 때문에 난리가 났다. 미국 프로축구팀인 LAFC는 MLS 역대 최고 이적료인 2650만 달러(약 368억 원)을 주고 토트넘에서 손흥민을 데려 왔다. 언론에 따르면 주급도 25만 달러(약 3억 5000만 원)에 이르러 LAFC 전체 선수의 절반 가까이에 이르는 수준이라고 한다.

물론 손흥민 선수는 EPL에 있을 때부터 워낙 세계적인 선수로 정평이 나 있었고 그의 실력 또한 이미 공인된 상태였기에 LAFC가 많은 돈을 주고 데려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나이가 32세에 이르면서 많은 축구 전문가들로부터 에이징 커브에 들어서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기에 LAFC가 이미 한물간 선수를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데려가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 큰돈을 받고 손흥민 선수를 이적시킨 토트넘이 거래를 잘한 것으로 평가했다.

그러나 손흥민이 미국에 간 지 불과 한 달 만에 상황은 완전히 반전됐다. 손흥민은 원정 세 경기를 치르면서 그의 체력과 기량이 아직도 전성기에 못지않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전 세계적으로 어마어마한 그의 팬덤으로 인한 그의 유니폼 판매가 모든 스포츠 종목의 유명선수들을 앞서면서 구단에 큰 이득을 가져다주고 있다. 

게다가 손흥민 선수를 보러 오는 관중들로 인해 티켓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어 결국 LAFC가 손흥민을 데려온 것은 ‘신의 한 수’가 되고 있다. 전 세계 축구 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있고, 영국의 팬들은 그를 다시 영국으로 데려오라고 아우성치고 있다.

왜 사람들은 손흥민에게 열광하는가? 그 이유는 축구 선수로서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지적받고 있을 때 오히려 다시 최고의 자리로 올라서는 역전의 묘미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스포츠에만 이런 역전의 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도 역전의 묘미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은 약세인 전력으로 막강한 일본 수군과 맞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가 백성들로부터 신망이 두터워지는 것을 시기한 왕과 신료들에 의해 반역의 죄를 덮어쓰고 끌려갔다.

하지만 그가 없는 전쟁에서 조선 수군은 일본에게 연전연패를 당했다. 결국 선조는 그를 다시 자기 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렇지만 이미 모든 전함은 다 파괴됐고 남은 것은 불과 12척뿐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 적은 배를 가지고도 일본의 전함과 맞서 싸워 승리를 거두는 역전의 묘미를 보여줬다. 우리 국민은 바로 여기에 열광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런 거창한 일들만 역전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얼굴이 못생겨 따돌림받다가 이를 극복하고 최고의 영화배우가 되는 사람, 키가 작아 불리한데도 이것을 극복하고 세계적인 모델이 되는 사람, 평생을 무명가수로 살다가 인생 막판에 노래 한 곡을 잘 불러 성공하는 사람, 사업에 실패하고 쫄딱 망했어도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 크게 성공하는 사람 등 역전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사람은 세상에 부지기수로 많다.

지금도 이 사회에는 좋지 않은 여건 속에서 발버둥 치며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인생에 대해 회의를 느낄 수가 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다 보면 반드시 역전의 묘미를 느낄 때가 올 것이다. 

설사 그런 날이 오지 않더라도, 그런 기대감을 품고 살아가는 삶이 낙심하며 우울하게 생각 없이 사는 삶보다 훨씬 가치 있고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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