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칼럼] 융·건릉의 소나무와 참나무

조진래 기자 2024-12-10 08:05:16

초등학교 미술 시간에는 소나무와 산을 많이 그렸다. 가을에 도토리를 줍고 소나무를 흔들어 수북이 쌓인 가리 잎을 망태에 담아오기도 했다. 도시 생활 반 백년을 훌쩍 넘기고 보니 도토리 줍던 가난한 시절이 왜 생각날까. 땔감 하러 매일 지나던 지겨운 나무 길이 이젠 둘레 산책길로 바뀌었다. 숲속 산책로는 요즘 ‘치유와 보약의 길’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울창한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진 융릉(隆陵)과 건릉(健陵) 산책길은 소문난 나들이 코스다. 주말이면 사계절 내내 관광객으로 붐빈다. 융릉은 조선 후기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장조’와 어머니 왕비 헌경왕후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다. 건릉은 정조와 부인 효의황후 김 씨의 합장묘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역사의 현장이다. 학생들 자연체험학습장으로도 인기가 높다.

할아버지가 손자 손을 잡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다. 손자의 질문을 들어보니 정조의 효심에 관한 내용이다. 효가 무너져 가는 요즈음, 융·건릉에서 들을 수 있는 효심이 전국에 전파되었으면 좋겠다. 이곳 도로 이름이 ‘효행로’라고 알려진 것처럼, 가정마다 정조의 효행이 회복되기를 마음속으로 바랐다.

입구의 역사문화관을 거치면 좌우로 정렬된 소나무가 반갑게 맞는다. 우측이 융릉, 좌측이 건릉 길이다. 왼쪽은 약간 오르막이라 대부분 오른쪽 길을 택한다. 한 바퀴 돌면 약 한 시간이다. 노약자에게는 안성맞춤 산책길이다. 소나무 군락지로 이어져 쾌적한 솔향이 온몸을 감싼다. 피톤치드와 음이온, 새소리가 합쳐져 절로 평안한 마음이다.

일주일 전에는 단풍이 절정이라고 했는데 참나무는 벌써 옷을 벗어버린 민낯이다. 산책길은 낙엽으로 두꺼운 옷을 입었다. 낙엽을 밟으며 깊은 가을의 정취를 느꼈다. 소나무가 빽빽한 곳에서는 숨바꼭질하듯 모양을 취해 사진에 담았다. 코끝을 스치는 진한 솔향과 나무 사이로 보이는 청명한 가을 하늘이 잠시 눈길을 붙잡았다.

소나무와 전나무, 참나무가 어우러진 숲과 산책로는 생명이다. 스트레스에 노출된 사람, 우울증이나 아토피, 다양한 질환자들이 숲을 찾는 이유가 있다. 숲은 심신의 안정과 회복을 돕는 치유의 공간이다. 가슴을 열고 들숨 날숨을 길게 반복한다. 정조의 효심에 깊은 감동을 느끼면서 침묵의 하늘을 우러러 본다. 

 
임병량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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