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성공 CEO에게서 배운다] ③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조진래 기자 2023-04-20 17:43:45
서정진 회장은 장년 성공창업의 모델이다. 45세의 늦은 나이에 ‘셀트리온’을 창업해 세계적인 바이오시밀러 회사로 키웠다.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한 때 경영권을 내려놓고 명예회장으로 물러 앉기도 했지만 그의 일생은 도전 그 자체였다. 


◇ 시작은 많이 늦었지만… 
서정진 회장은 학교도 사회 생활도, 창업도 모두 또래들에 비해 늦었다. 인천 제물포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친의 장사를 돕기 위해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가 뒤늦게 건국대학교에 진학했다. 시작이 늦었기에 그는 이를 악물고 학업에 매집했다. 덕분에 매년 전교 수석을 도맡다 싶이 하면서, 당시로선 예가 거의 없었던 조기졸업에도 성공해 그나마 또래들과 연배를 맞출 수 있었다. 

하지만 취업 역시 2년이 늦었고 삼성전기에 정식 첫 입사를 하게 된다. 이 때 그룹 비서실에서 근무한 경험이 그의 다음 인생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과분하게도 신입사원 교육을 담당하게 되면서 그는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접하게 되고, 그의 사업보국(事業報國) 경영철학이 가식이 아닌 진실 임을 확인하게 된다. 

◇ 누구나 창업할 수 있다는 믿음
많은 부분에서 늦은 서 회장은 “흙 수저인 나도 창업을 했는데…”라며 청년들에게 창업을 적극 권한다. 마흔 다섯에 단돈 5000만 원으로 시업을 시작했을 때 그는 의료의 ‘의’자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내가 할 수 있었다면 누구라도 못하겠느냐”며 “도망갈 구멍부터 찾지 말고, 스스로를 절박하게 만들라”고 독려한다. 그는 특히 “성공하고 싶으면 하루에 10명한테 미안하고 고맙다고 진심으로 말하라”고 조언한다.

그는 평소에도 늘 “아직 ‘성공한 기업’은 없다”고 말한다. 반대로 실패한 기업도 없다고 말한다. 성공한 기업도 사실은 ‘아직’ 실패하지 않은 기업일 뿐이며, 실패한 기업이라는 곳들도 ‘아직’ 성공하지 못한 기업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지속적인 혁신과 변화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논리다. 그는 “셀트리온 역시 아직 실패하지 않은 기업이며, 지속적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부단하게 노력하는 기업”이라고 소개한다.

◇ 대우 그리고 김우중 회장과의 인연
삼성 비서실에서 한국생산성본부로 자리를 옮긴 서정진은 이곳에서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인연을 맺게 된다. 1978년에 새한자동차를 인수한 대우자동차가 생산성본부에 컨설팅을 맡겼는데 담당자가 서 회장이었다. 그는 당돌하게 김우중 회장에게 “개발하면 개발해서 망하고, 안하면 차가 없어서 망하는데 왜 GM을 인수하셨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리고는 품질과 생산성 증대, 동유럽 공략이라는 대안을 제시했고 이것이 김 회장 생각과 맞아 떨어졌다. 그는 곧바로 대우차 세계화추진본부장으로 스카웃되었다.

서 회장은 김우중 회장에게 많은 도움을 얻고 신세를 졌지만 그룹의 실패에서 소중한 교훈도 얻게 된다. 최고경영자가 중요한 의사결정을 제대로 못 내리고 고집만 피우고 오판을 해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외환위기 때 내실을 기해야 함에도 과잉투자를 한 것이 치명적이었다고 판단했다. 김 회장이 쌍용차에 이어 르노삼성까지 인수하려 하자 결사 반대했으나 끝내 과욕을 부리다 그런 결과를 낳았다고 말한다. 그가 “그래서 나는 셀트리온에서 멀쩡한 맨 정신일 때 물러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 영 빈 말은 아니다.

◇ 첫째도 신뢰, 둘째도 신뢰
뒤늦은 창업에 초기 경영 상 어려움도 많았다. 한 때는 15억 원이 없어 당장 부도가 날 위기 상황도 있었다. 다음 말 까지 돈을 마련하지 않으면 꼼짝없이 부도가 날 판이었다. 그는 지인들에게 급히 SOS를 쳤다. 때 마침 병원 개업을 준비 중이던 의사 친구가 15억 원을 갖고 있었다. 그 친구도 당장 병원 임대 계약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서 회장을 위해 차용증도 안받고 기꺼이 돈을 내주었다. 친구를 믿었던 것이다. 서 회장은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아서 가 아니라 좋은 친구와 좋은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회고한다.

서 회장은 낡은 낡은 구두도 그에 대한 투자자의 믿음을 보증해 주었다. 싱가포르의 국부펀드 ‘테마섹’이 셀트리온에 처음 투자할 당시, 테마색 측이 서울 롯데호텔로 서 회장을 불러냈다. 자신들이 왜 셀트리온에 투자해야 하는 지를 묻자 서 회장은 10년째 신고 다니던 낡은 구두를 보여주며 “나는 나를 위해 일하지 않고 회사를 위해 일한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의 진심이 통했고, 이후 다른 해외 투자자들도 그를 믿고 흔쾌히 투자 대열에 합류했다.


◇ 내 회사와 내 기술을 믿어라
서 회장은 의료 부문의 문외한이었지만 적어도 셀트리온의 성장성만큼은 추후의 의심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선 세계 정상의 셀트리온의 기술력을 믿었다. 제품 라인업은 물론 풍부한 현금력, 그리고 시장의 좋은 평판을 믿었다. 특허까지 자력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무기였다. 그는 셀트리온이 2030년까지 전체 안티바디(항체) 치료제 시장에서 최소 15%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만들어야 한다고 독려한다.

코로나가 창궐하자 셀트리온은 백신보다 항체치료제 개발에 힘썼다. 결과적으로 화이자나 모더나 같은 외국 기업들이 조기에 백신을 만들어 공급하면서 셀트리온의 노력이 빛이 바랬지만, 그는 ‘코로나 청정국’을 만들겠다며 끝까지 연구진을 독려했다. 셀트리온도 마음만 먹으면 백신을 만들 수 있다면서도 코로나 퇴치에는 예방용 백신 보다 완치용 치료제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그는 사회적 재앙을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해선 안된다는 신념 아래 국내외에서 기술이 입증된 제품들을 더 싸게 공급하려 애썼다. 

◇ 도전, 또 도전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의 여파로 셀트리온의 중국 투자 사업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흔히 ‘한국 기업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것이라 어느 기업이든 투자에 신중을 기하기 마련인데, 셀트리온은 코로너 전인 2020년 4월 중국 우한에 6만 평 규모의 합작공장 기공식을 계획했었다. 설비투자만 6000억 원이 투입되는 대공사였다. 하필 코로나 바이러스의 진원지로 회자되던 우한 지역이라 우려가 더 컸지만 서 회장은 이곳에서 유방암 치료제를 만들어 중국 의료보험에 연계하는 획기적인 사업 계획을 구상했었다.

서 회장은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가 터졌을 때도 전혀 걱정할 것이 없다며 낙관해 주목을 끌었다. 그는 역으로 일본이 더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만성적인 대일 무역 역조를 바로잡고 우리도 소재산업 중심으로 산업을 재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일본은 이제 독점 기술은 없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그의 도전 정신을 엇볼 수 있는 대목이다.

◇ 경제는 실용주의… 기업인은 정치 말아야
서 회장은 “경제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실용주의이며 분위기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여야, 보수와 진보를 넘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정부가 경제를 만들 순 없다”며 정부의 역할은 ‘경제 촉진제’ 정도면 족하다고 말한다. 진정한 경제 주체들은 기업이라고 강조한다. 기업의 역할도 남달리 강조한다. 통 크게 투자에 나서 나라 살리기에 힘을 모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는 기업인의 의무 네 가지를 언급한 바 있다. 가장 먼저, 혁신이다. 다음은 기업 불신을 불식시키는 것이다. 차세대 산업과 미래 인재들을 육성하는 것과 마래 동량인 후배들을 잘 기르는 것이 세 번 째다. 마지막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가진 사람이 조금 더 희생하고, 없는 사람에게 조금 더 나눠주는 사회가 만들어지도록 기업인들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 회장 자신도 한 때 서울시장 출마를 권유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절대 정치는 하지 말라”고 임직원들에게 말한다. 기업인들은 정치할 자격을 상실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도 그는 “대통령이라면 경제가 제대로 돌아갈 때까지 계속 기업인들을 만나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해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회장들이 대통령이나 언론 앞에서 주눅 들어 말 한 마디 못하는 환경에서는 기업이 제대로 될 리 없고 나라 경제가 잘 굴러갈 수 없다는 얘기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