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가업상속 공제제도 개편 시급하다 (상) '100년 기업' 키우기 너무 힘든 대한민국
조진래 기자2023-06-22 09:57:34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기업이 3만 곳이 넘는다. 오랜 가업(家業)을 승계한 기업들이다. 그런데 일본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55%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그럼에도 100년 가업의 전통이 유지되는 비결이 무엇일까. 일본보다 상속세 최고세율이 더 낮고, 정부가 ‘가업상속공제제도’까지 만들어 엄청나게 홍보하고 있음에도, 우리와 너무나도 비교되는 이런 아이러니의 배경과 이유, 그리고 해법을 ‘비바 2080’이 상·하로 나눠 점검해 본다.
◇ 턱없이 부족한 국내 백년 기업 중소기업벤처부 산하 소상공진흥공단이 추진 중인 백년가게 육성사업’이 있다. 30년 이상 된 소상공인과 소중기업을 발굴해 100년 이상 존속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육성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기업 역사가 짧은 우리나라에서 백년가게 후보 기업은 3% 남짓에 그친다. 578년에 설립된 사찰 전문 건설기업 ‘곤고구미(金剛組)’를 포함해 100년 이상 된 기업이 3만 3000곳에 달하는 일본은 물론 1만 곳이 넘는 미국이나 독일 등과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100년 이상 된 국내 일반 기업은 10곳에 불과하다. 1896년에 세워진 두산을 비롯해 신한은행(옛 한성은행, 1897), 동화약품(1897), 우리은행(옛 대한천일은행, 1899), 몽고식품(1905), 광장시장(1911), 보진재(1912), 성창기업지주(1916), KR모터스(옛 대전피혁, 1917), 경방(1919) 등이다. 그나마 보진재는 2020년 6월에 폐업했다. 50년 이상 장수기업도 전체 기업의 0.2% 정도에 불과하다. 평균 업력도 60년이 채 되지 않는다.
◇ 해외 가업승계 기업의 장수 비결은? 기업 전문가들은 해외 장수기업의 공통점을 대체로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첫째, 환경 변화에 대단히 민감하다. 그리고 잘 적응한다. 둘째, 확실한 핵심가치와 정체성을 기반으로 엄청난 내부 결속력과 자부심을 가졌다. 셋째, 기업가 정신이 투철하다. 보수적인 듯 하지만 모험심이 강하고 창의적이다. 넷째, 확실한 지배구조를 가졌다. 외부 경영권 공격을 방어할 탄탄한 지분을 보유했다. 다섯째, 이런 기업 스스로의 노력 못지않게 정부의 법적·제도적 지원도 한 몫 했다. 장수기업의 상당 수가 ‘가족기업’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의 곤고구미와 호시료칸(숙박업), 이탈리아의 마르케지 안티노리(포도주 제조)와 베레타(총기 제조), 영국의 존 브루크 앤 선즈(섬유 제조)와 R. 더트넬 앤 선즈(건설), 독일의 폰 포슁거(유리 제조), 프랑스의 멜레리오 디 멜레르(보석업) 등이 대표적이다.
<백년가업>을 쓴 송치영 ㈜프로툴 대표는 가족기업이 오래 견디는 이유로 높은 신뢰감, 명성에 대한 자부심을 든다. 미래의 자손들에 까지 기업을 전해준다 생각하니 기업이 오래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송 대표는 우리 기업들이 이들처럼 원활하게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가업승계 제도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기간에 생존 비율이 3분의 1에 불과하고, 그 기업의 12% 만이 3세대에 살아남고 또 그 기업의 3~4%만이 4세대까지 살아남는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 ‘부의 대물림’이라는 비판적 시각 우리 국민들은 가업승계를 ‘부의 대물림’이라고 비판적으로 본다. 특히 재벌기업의 2세, 3세 승계에 대해선 무척 비판적이다. 창업주 이상의 경영 성과와 사회공헌을 하는 2세, 3세 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상속 문제만 나오면 일단 부정적 시각 일변도다. 잊을 만 하면 터지는 재벌기업 오너들의 탈세와 편법, 여기에 경영을 더 잘 할 생각보다는 ‘금수저’의 혜택을 어떻게 하면 더 잘 누릴까를 고민하는 어설픈 후계자들의 책임 없는 행동들이 국민들의 뇌리에 더 깊이 자리한다.
때문에 기업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책임 있는 대물림’ 의식이다. 기업을 넘겨 받는 후계자 역시 단순히 ‘상속’을 받는다는 개념보다 ‘또 다른 창업’을 한다는 각오로 치열하게 기업 경영에 나서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런 기업가들의 인식 개선과 함께 ‘책임 있는 대물림’이 제도적 이뤄지도록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상속세와 증여세법을 포함한 가업승계 지원제도 전반의 개선을 지적한다.
상속세는 특히 늘 ‘뜨거운 감자’다. 어느 때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부의 대물림’은 죄악이며, 재벌기업들에게 과중한 상속세를 매겨 사회 정의를 바로 세워야 그것이 사회정의라는 공산·사회주의적 이념이 팽배하다. 오죽했으면 전경련 같은 대기업 단체들이 “이렇게 무겁게 상속세를 매기면 3대만 지나면 자동적으로 전문경영인 체제가 될 것”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을 늘어놓았을까.
우리나라에서 100년 기업이 나오기는커녕 가업 승계가 그렇게 힘든 큰 이유 중 하나가 과중한 상속세 부담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우리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OECD 평균의 2배가 넘는다. 그나마 기업상속공제라는 것을 만들어 참된 대물림 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 가업상속공제란 무엇인가 기업상속공제는 ‘중소·중견기업’의 원활한 가업 승계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10년 이상 계속해서 경영한 기업을 상속인에게 승계한 경우, 최대 600억 원까지 상속과세가액에서 공제해 준다. 공제한도액은 10년 이상 기업이 300억, 20년 이상은 400억, 30년 이상이면 600억 원이다. 대상이 되는 ‘가업상속재산’은 개인기업의 경우 상속재산 가운데 가업에 직접 사용되는 토지와 건축물, 기계장치 등의 자산을 말한다. 법인기업은 상속재산 중 법인의 주식과 출자지분이다.
우리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를 적용받으려면 기업 요건, 피상속인 요건, 상속인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기업요건으로는 일단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해 경영한 기업이어야 한다. 피상속인 요건으로는, 법인일 경우 법인의 최대주주(최대출자자)로 특수관계인의 주식 등을 합해 발행주식총수의 40%(상장법인은 20%) 이상을 10년 이상 계속 보유해야 한다. 상속개시일 현재 국내 거주자이고, 가업 영위기간 중 절반 이상 대표를 역임했거나 10년 이상 또는 10년 중 5년 이상 대표로 재직했어야 한다.
상속인 요건으로는 우선, 상속개시일 현재 18세 이상이어야 한다. 상속개시일 전에 2년 이상 직접 가업에 종사해야 한다. 다만, 피상속인이 65세 이전에 사망하거나 천재지변이나 인재 등 부득이한 사유로 사망한 경우엔 예외를 인정해 준다. 상속세 과세표준 신고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하고, 그 때부터 2년 이내에 대표이사로 취임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제한들이 오히려 100년 기업의 육성과 성장을 막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건이 필요 이상으로 까다로와 충족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사후 의무까지 부과되어 녹록치 않다. 상속공제제도 손질 뿐만아니라 차제에 상속세 자체에 대한 전향적인 인식 개선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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