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의대 증원 집행정지 기각… 이제 정말 대화가 필요한 때다

조진래 기자 2024-05-17 08:35:44

의과대학 증원 및 배분을 멈춰달라는 의료계의 집행정지 신청이 서울고등법원 항고심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 달 1심인 서울행정법원에 이어 16일 2심 법원인 서울고법까지 신청을 각하·기각 하면서 27년 만의 의대 증원 프로젝트가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아직 본안 소송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정부의 의대 증원과 의료 개혁이 한 고비를 넘긴 것은 확실해 보인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사법부가 현명한 결정을 해 주었다”며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우리 국민과 정부는 의료 개혁을 가로막던 큰 산 하나를 넘었다”고 평가했다.
 
정부는 2025학년도 대학입시 관련 절차를 신속히 마무리하기 위해 곧 대학별 학칙 개정과 모집 인원을 조속히 확정할 방침이다. 당초 일정대로 이달 말까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대학 입학전형 시행 계획을 승인하고, 대학별 모집 인원을 발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사실상 의료계 내부에서도 집단행동을 지속해야 한다는 강경파와, 명분과 실익이 없는 집단행동을 중단하자는 두 부류로 나뉘고 있다고 한다. 의대 교수들은 장기전을 준비하는 모양세지만 아무래도 추진 동력은 약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번 법원의 결정을 계기로 의대 증원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란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란다. 정부는 선진국 수준의 교육 여건을 만들기 위한 ‘의대 교육 선진화 방안’을 조속히 추진하고, 의료계는 더 이상 국민을 볼모로 한 실력행사를 멈추고 현장으로 복귀하길 희망 한다.

의료계는 즉각 대법원에 재항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대법원 결정이 나오기 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수 밖에 없어 사실상 의료계와 정부 간 명분과 실리를 둘러싼 1라운드 싸움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기각 결정을 계기로 다시 단일대오를 형성해 끝까지 대 정부 투쟁을 하자는 주장이 나오지만, 법원의 각하 및 기각 결정이 내려진 상황에서 이제는 의료계가 대승적 차원의 결단을 내려 정부와 다음 조치를 머리를 맞대고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가 ‘2000명’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고 대학들도 올해 증원 규모를 1500명 정도로 추진할 뜻을 밝혔던 만큼, 정부와 의료계 간 대화의 여건은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서로가 얼마나 진정성을 갖고 대화에 나서느냐가 중요한 시점이다.

더욱이 정부는 의대 증원에 따른 의료계의 반발을 무마하고 의료계 현장의 애로 사항을 해결해 주겠다며 ‘필수의료패키지’를 제안한 바 있다. 의료계는 실리적인 관점에서 모두가 사는 방향으로 이 문제를 재검토해 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정부 역시 필수의료패키지에 담은 의료 여건 개선 노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한편으로 의료 현장의 핵심 인력인 전공의들이 하루빨리 현장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제반 법적·행정적 처리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국립대 교수 증원이라든가 수련병원 재정난을 완화 조치 등도 뒤따라야 한다.

환자단체들이 “더 이상 환자 피해가 없도록 빠른 의료정상화 조치가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던 바람처럼, 의료계 전체도 이제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 진정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이번 판결로 인해 사실상 확정된 의대 증원 조치가 궁극적으로 환자 중심 의료환경 조성의 발판이 되길 바란다. 향후 배출될 추가 의료인력이 필수중증의료나 지역의료, 공공의료 등에 적절히 투입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되길 소망한다.

대학 내 갈등이나 의대생 유급 우려가 여전하다는 현실 상황을 결코 가볍게 봐서도 안될 것이다. 여전히 수업 복귀를 거부하는 일부 의대생들을 다시 캠퍼스 수련실로 이끄는 어른 의사, 선배 의사들의 모습이 기대된다.

정치권 역시 이번 사태를 더 이상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적극적인 대화와 타협의 필요성은 공감하고 있는 만큼, 정치권부터 합리적인 사태 해결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국회 공론화 특위에서 정부와 여야,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대타협의 해법을 찾는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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