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토지나 건물을 가진 사람들이 리츠(REITs)에 현물로 출자하면 주주 지위를 부여받는 것은 물론 부동산 매각으로 실제 이익이 나기 전까지 양도세가 과세이연되어 상당한 절세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 경우 사업자가 지금처럼 10%대의 고금리 대출을 받아 토지를 매입하지 않아도 사업 진행이 가능해져,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도 안정성을 담보로 한결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 정부 ‘부동산 PF제도 개선방안’ 발표 정부는 14일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현재 3∼5%에 불과한 PF 사업의 자기자본비율을 선진국 수준인 20% 이상으로 높이고 이에 세제혜택을 부여하는 내용 등을 골자로 한 ‘부동산 PF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금융회사가 자기자본비율이 낮은 PF사업에 대출해줄 때 적립해야 하는 자본금 및 충당금 비율도 높여 PF사업의 자기자본비율 확충을 유도하기로 했다.
정부는 국내 부동산 PF 시장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 230조 원 규모로 성장했음에도 부동산 PF발 위기가 반복되는 것이 선진국에 비해 낮은 PF 자기자본비율이라고 판단하고, 미국이나 일본처럼 안정적인 투자자들을 모아 자기자본비율을 끌어올리기로 했다.
자기자본이 약해 총사업비의 20∼40%에 달하는 토지 매입 단계에서부터 고금리 대출을 받아야 해 결국 사업 진행도 더디고 대출을 담당하는 은행권도 사업성 보다는 건설사나 신탁사의 보증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런 구조 속에서 금리가 오르거나 경기가 위축되면 PF 사업성이 급격히 악화되어 그 리스크가 시행사에서 건설사를 거쳐 금융회사로 까지 확산될 위험성이 컸다. 이에 정부가 선택한 카드가 토지주의 리츠 현물출자 유도인 셈이다.
◇ 토지주 현물출자로 노후 안정적 수익 기대 이 제도가 시행되면 토지주가 땅을 파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토지 등의 현물출자를 통해 리츠의 주주로 참여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사업 수익이 생기면 주주의 권리대로 배당을 받을 수 있어 출자자는 장기적인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고, 사업주는 토지 매입 비용 절감을 통해 자기자본비율을 높여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된다.
국토부는 수도권 주요 지자체 내 100평 이상 주거·상업지역의 나대지 7000만㎡가 현물출자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들 유휴 토지들 가운데 적지 않은 현물출자가 이뤄질 경우, 궁극적으로는 사업비 절감을 통한 분양가 인하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정부는 토지 현물출자를 독려하기 위한 다양한 후속조치도 마련할 예정이다. 우선, 토지 용도 제한과 건폐율·용적률 규제를 대폭 완화해 이른바 ‘공간혁신구역’에 랜드마크 빌딩을 세울 방침이다. 이를 위한 공공에 리츠 설립 및 사업성 분석 컨설팅을 지원하기로 했다. 특히 토지주가 기업형 장기임대주택 같은 정책사업에 현물출자를 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을 확약해 주기로 했다.
서울시는 자기자본비율이 높은 PF사업에 용적률 및 공공기여 기준을 완화해 주는 등 도시규제 특례를 적극 검토키로 했다. 이런 사업에는 금융회사의 PF대출 때 위험 가중치와 충당금을 차등화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PF 사업성 평가 기준과 절차도 새롭게 정비해, 정부가 사업성 전문평가기관을 인증하고 이 기관의 평가를 의무화할 방침이다. ◇ 당장 시행 시 부적용 우려… 유예기간 정해 단계 적용 바람직 정부의 의욕적인 사업 추진 계획에도 불구하고 이 조치가 당장 시장에 적용되기엔 현실적인 난제들이 적지 않다. 당장 업계애서는 상대적으로 영세한 시행업체들을 보호할 안전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부동산개발업법’에 따라 개발사업을 하는 업체는 2400곳에 달하는데 이 가운데 연 매출 100억 원 이상인 곳은 5%에 불과하다. 95%가 영세 시행사인 셈이라, PF 자기자본비율 강화 조치가 당장 시행되면 시행업계에 도미노처럼 도산 사태가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팽배하다.
정부도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충분한’ 유예 기간을 부여하고 단계적인 사업 진행을 추진할 방침이다. 강영수 금융위 금융정책과장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PF 자기자본비율 상향 조치가 시행되더라도 시행 이전 PF 대출 건에 소급 적용은 없다”면서 “규제로 인해 자금 공급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동산 개발사업의 자금조달을 보다 장기화하는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른바 자금 조달의 ‘미스매치’를 없애려면 최소 3~4년이 소요되는 개발사업에 6개월 이내 만기의 PF-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이 활용되는 자금조달 관행부터 현실에 맞게 보완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행사 관계자는 “시행사들이 전체 사업비의 고작 3~4% 밖에 안되는 자금을 갖고 대규모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잠재적 리스크”라며 “사업 실패로 인한 부실화 리스크가 사회 전체로 전이 확산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시장 관계자들과 직접 머리를 맞대고 보다 정교하고 합리적인 해법을 찾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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