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이슈] '최선을 다한' 필수의료 사망사고에 ‘반의사불벌’ 검토… ‘중과실’ 중심 기소 방침에 '고령사망 면죄부' 우려도

박성훈 기자 2025-03-06 16:12:45
클립아트코리아. 기사 및 보도와 연관 없음.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 행위 도중 발생한 사망 사고에 대해 정부가 유족 동의를 전제로 의료진의 형사 처벌을 면해 주는 ‘반의사불벌’ 특례를 적용할 방침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새로 만들어 최장 150일 동안 의료진의 중과실 여부를 판단한 후 수사당국에 기소 자제 등을 권고한다는 게 새 특례의 핵심이다.
 
하지만 환자 및 시민단체는 이 조치가 자칫 의료진에 과도한 면죄부를 주는 특혜가 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분위기다. 특히 고령자들은 의료 조치 중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해도 객관적인 소명이나 책임 규명이 어려워 치명적인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며 정부 방침 재고를 촉구하는 의견을 내놓고 있어 실제 법 적용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 정부, “중과실 여부가 기소 여부 판단의 핵심… 필수의료 사망사고도 ‘반의사불벌’”

보건복지부는 6일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이른바 ‘의료사고안전망 구축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의료 사고의 특수성을 십분 고려해, 환자의 상해 정도가 아닌 의료진 과실의 경중 등 사고의 원인을 중심으로 형사 기소 체계를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환자와 의료진이 합의하면 형사 처벌을 면책하는 ‘반의사불벌’이 폭 넓게 인정될 기반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정부는 특히 사망 사고 때 필수의료 행위에 한해 ‘반의사불벌’ 적용을 적극 검토한다고 밝혔다. 필수의료 사망 사고는 사고 당시의 긴급성이나 의료진의 구명 활동 등을 고려해 처벌을 줄이거나 면제하도록 한다는 방침도 거듭 확인했다. 환자 사망사고 시 최소 3~5년이 걸리는 의료사고 수사의 특성을 고려해 신속한 수사체계도 마련할 방침이다.

정부는 의료계와 환자·시민사회, 법조계 등으로 구성되는 의료사고심의위원회를 신설해 늦어도 150일 안에는 필수의료·중과실 여부를 판단하고, 수사 당국에 기소 자제 등을 권고토록 할 방침이다. 특히 ‘의료분쟁조정법’을 개정해 심의위원회의 기소 자제 의견이 있을 경우 수사 당국이 해당 권고를 존중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형사 기소보다는 민사적 해결을 우선하겠다는 것이다.

◇ 의료사고 따른 분쟁 조기 해결 위해 국가 책임 범위 확대

정부는 의료사고에 뒤따르는 의료 분쟁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 배상 요건도 대폭 강화할 방침이다. 먼저, 의료기관 개설자를 대상으로 기관 내 의료사고에 대한 책임보험(공제)에 의무적으로 가입토록 할 예정이다. 이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예산 범위에서 보험료 일부를 지원하도록 할 계획이다. 대한의사협회의 의료배상공제조합에는 현재 의원과 병원·종합병원의 평균 35% 정도만 가입한 상태다.

현재 진료과목별로 10배 이상 차이가 나는 보험료율도 손을 봐, 진료과별 보험료율 차등액에 상한을 둘 예정이다. 또 1000만 원 수준으로 배상액이 적은 사건에 대해서는 보험사 등의 자체 심사를 통해 한 달 내에 배상하게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이렇게 되면 중증·응급의료 등 생명과 직결된 고위험 필수진료에는 고액 배상이 가능해 진다.

정부는 불가항력적인 분만 사고 시 국가 보상을 현재의 3000만 원에서 3억 원으로 올린 데 이어 중증·응급, 중증 소아 진료 등 다른 분야로의 보상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료사고보상심의위가 민간 보험의 상품 구조 등을 관리·감독할 수 있게 기능을 확대하고, 공적 배상기구 신설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연내 입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 해외 선진국들도 의료사고 형사책임에 ‘신중’

해외 주요 선진국들은 우리보다 훨씬 앞서 환자와 의료진간 불필요한 갈등·분쟁을 막고 중대한 과실 위주로 기소 또는 처벌토록 하는 방향으로 법과 관련 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의료사고의 후유증을 최소화하고 의료서비스의 질적 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에서, 의료진의 과실 등에 대한 형사책임 추궁 보다는 환자의 안전과 의료사고 예방, 환자-의료진 간 소통을 위한 제도적 개선을 우선시하고 있다.

영국은 의료진의 설명 의무를 강조하면서 이때의 의료진의 유감 표현을 재판의 증거로 쓸 수 없도록 하는 ‘사과법’(apology law)을 적용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명백한 사망 위험 등에 대한 주의를 다하지 않았을 때를 ‘중과실치사죄’로 판단해 기소한다. 일본은 유족이 요청할 경우 의사회 등 전문기관이 조사토록 법제화하면서, 정상적 의료를 ‘상당히 일탈한’ 중과실에만 형사처벌을 적용한다.

프랑스는 단순 과실의 경우 의료진이 손해를 직접 초래했다고 인정될 때만 형사책임이 이뤄지도록 하되, 중과실이라면 간접적인 인과관계만으로도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다. 오스트리아는 환자가 의료행위에 동의했는지를 중시한다. 환자 동의 없이 진료했다가 사고가 나면 형사 처벌 대상이 된다. 특히 의료사고로 인해 환자가 일을 못하는 기간이 2주 이내라면 형사 책임을 해 준다.

◇ 고령자 돌봄 및 치료 과정의 과실 여부 판단 어려워

정부의 이번 의료사고 안전망 구축방안은 이른바 ‘최선을 다한 의료진’이 의료사고 책임으로부터 과도한 부담을 지지 않도록 해 정상적인 의료 행위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가 깔려 있다. 환자의 권익 보장을 최우선으로 하겠지만, 선의의 치료가 나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해서 무조건 의료진을 형사 처벌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원칙론에 입각한 것이다.

해외 선진국들도 우리보다 앞서 이런 원칙에 상응하는 조치들을 법제화해 시행 중이다. 하지만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고령자 돌봄 및 치료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망사고 등은 인과관계 등이 제대로 확인되기 어려운 상태에서 결국 ‘고령’이나 ‘기저질환’이라는 이유 만으로 확실한 의료 과실 여부 판단 없이 사망처리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특히 요양병원 등 일부 시설에서는 전문 의료진을 갖춘 것이 거의 없다시피 해 갑자기 돌봄이나 치료 과정에서 사망에 이르는 사고가 생겨도 원인 규명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최근 조모를 잃었다는 김 모 씨는 “의료과실 여부는 누구도 쉽게 판단하고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라며 “자칫 이번 조치가 고령자 치료 시 의료진에 면죄부를 줄 가능성은 없는지도 잘 따져본 후 입법이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성훈 기자 shpark@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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