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신간] 이시형·윤방부 <평생 현역으로 건강하게 사는 법>
2025-09-12

우리 중장년 세대들에게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는 대단히 부정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IMF 외환위기과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경험한 트라우마 때문이다. 뛰어난 기업가치에도 불구하고 일시적으로 자금난이나 경영난을 겪고 있는 위기의 기업들을 자본으로 후려쳐 막대한 이익을 빼먹는 흡혈귀 쯤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모펀드란, 소수의 투자자에게서 자금을 모아 비상장기업이나 구조조정 대상 기업 등에 집중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이런 기초 위에 만들어진 자본이기에 종종 ‘고위험 사적 자본’으로만 오해받기도 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 특히 우리에겐 ‘사모펀드=먹튀’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등에서 보았듯이, 기업의 장기 성장보다는 단기 수익 실현에 혈안이 된 ‘나쁜 자본’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럴까. 한국투자공사(KIC) 사모주식투자실 부장인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캐나다연기금이나 싱가포르투자청, 한국투자공사 같은 국부펀드들이 주요 투자자로 참여하는 세계적인 자산 운용처가 최근의 사모펀드라고 항변한다. 이제는 일회성 단기 이익만을 추구하는 투자 방식으로는 시장과 규제 당국, 그리고 무엇보다 투자자들로부터 외면받아 시장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국내에 아직 관련 시장이 열리기도 전에 아픈 경험을 많이 한 탓에 사모펀드에 대한 인식이 좋지는 않지만, 이를 반면교사 삼아 정부와 금융당국이 사모펀드 제도를 재정비하게 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라고 했다. 이후 국내 자본들도 본격적으로 사모펀드 산업에 뛰어들어 국내 시장도 커졌고, 기업들이 투명성과 장기적 가치 창출을 증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제 사모펀드는 기업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조력자”라고 강조한다. “기업의 재도약 뒤에는 보이지 않는 CEO, 사모펀드가 있다”고 말한다. 글로벌 톱 수준의 사모펀드들은 단순히 자본을 투입하는 기능을 넘어, 기업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안을 도출하고 실행까지 함께 하는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저자는 “오늘날 사모펀드는 전문성과 실행력, 가치 창출이라는 세 가지 역향을 갖춘 플랫폼으로 인정받으면서 국경과 문화적 차이마저 뛰어넘고 있다”고 했다. 그렇기에 이제는 더 이상 사모펀드를 무조건 경계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사모펀드를 활용해 더 나은 미래를 만들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이전처럼 단순한 ‘투기자본’으로 볼 것이 아니라, 기업을 회복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는 ‘기업 혁신이 가능한 자본’으로서의 사모펀드를 보자는 것이다. 사모펀드의 순기능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 이제 기업들에게 큰 이득이라는 설명이다. 저자는 “한국도 다시 성장 엔진의 불을 붙여야 할 때”라면서 “그 도전을 뒷받침하려면 기업의 혁신과 변화를 창조하는 협업 자본, 파트너십 자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저자는 “사모펀드가 이미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현대 비즈니스의 숨은 동력원’이라고 소개한다. 매일 마시는 커피, 자주 타는 택시, 주문이 일상화된 음식 배달 뒤에 사모펀드 투자자들의 결정이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모펀드가 무려 600곳에 달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쿠팡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2019년에 누적된 적자 탓에 거의 부도 상태에 몰렸던 쿠팡에 일본 사모펀드인 비전펀드의 손정의 회장이 30억 달러를 투자해 38%의 최대 지분을 확보한 이후 대한민국 최대 이커머스 기업으로 성장했다. 2021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하며 약 50억 달러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았다. 비전펀드도 무려 7배가 넘는 투자수익을 거두었다고 한다.
오리지널 바이오의약품을 본 떠 만드는 바이오시밀러 치료제 기업 셀트리온도 사모펀드의 도움으로 글로벌 기업이 된 케이스라고 소개했다. 수천억 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비용을 조달하지 못해 난관에 직면해 있던 2010년 5월에 2000억 원을 포함해 모두 3500억 원을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이 출자했다. 축적된 연구개발 성과와 서정진 회장의 경영 역량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R&D와 생산설비 확충을 계기로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제품 ‘램시마’는 유럽의약품청과 미국 FDA 승인을 얻어내 매년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게 된다.
‘배달의민족’도 2010년 설립 후 2022년에 와서야 영업이익 훅자를 기록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었다. 10년 가까이 배달비를 무료로 책정하고, 이를 회사와 식당이 절반씩 부담하며 출혈 마케팅을 벌인 탓이다. 창업자 김봉민 회장은 총 7차례 사모펀드의 투자를 유치해 총 5700억 원을 모았다. 그리고 2020년 12월에 독일 음식배달회사 ‘딜러버리 히어로’에 40억 달러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매각되었다. 저자는 그 이익의 60% 이상이 중국 투자사에 넘어 갔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하지만 성공적인 기업 매각 사례로 평가된다고 했다.
저자는 사모펀드가 기업의 방향을 혁신적으로 전환한 해외사례로 미국의 컴퓨터 기업 ‘델’을 들었다. 2007년 애플의 아이폰 출시 이후 성장 정체라는 벽에 부딪힌 상황에서 미국 최대 투자사 실버레이크가 창업자 마이클 델과 손잡고 델을 클라우드 환경에 최적화된 기업으로 성공적으로 재편했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를 대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던 미국의 오크스트리트헬스 병원도 미국 성장주식 투자사 제너럴 애틀랜틱의 투자와 경영 컨설팅 덕분에 지금음 미국 최대의 가치 기반 진료 병원으로 성장했다고 전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최대 리조트인 베네시안 리조트는 비즈니스 프로세스 개선을 통해 환골탈태의 전형적 모델로 소개했다. 미국의 턴어라운드 전문투자회사 아폴로가 인수한 후 카지노 사업과 객실 사업, 전시장 대관 및 임대 사업 등 전반의 운영 혁신을 통해 장기적으로 비즈니스 체질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다. 백신 등 온도에 민감한 고가의 바이오의약품을 냉장 운송하는 패키징 판매기업 씨세이프도 미드마켓 전문 투자회사 THL의 도움으로 혁신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고 4년 만에 시장 점유율을 2배 이상 끌어올리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소개했다.
인수합병을 통해 플랫폼을 확장한 성공 모델로는 버거킹을 들었다. 2010년 브라질계 사모펀드 3G캐피탈이 41억 달러에 버거킹을 인수한 후 인력 감축과 프로세스 및 메뉴 단순화, 고객 선호 신제품 개발 및 적극적인 해외 진출, 캐나다 페스트푸드 체인 팀홀튼 인수를 통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로 성공적인 턴어라운드를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이 투자로 3G캐피털은 투자금 대비 21배의 수익을 거두었다고 한다. 보석이나 미술품 같은 고위험 고가치 자산을 대상으로 한 특별보험을 중개하던 SRG를 미드마켓 투자전문운용사 HGGC가 인수해 3년간 10여 건의 인수합병을 통해 매출과 이익을 3배 이상 성장시킨 성공 사례도 소개했다.
저자는 한국 사모펀드 산업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네 가지 보완과제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투자 경험을 더 축적하고, 투자대상 기업과의 관계 구축 및 산업에 대한 이해를 넗혀야 한다고 했다. 기업 개선 역량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짧은 투자 기간과 가치 창출에 대한 접근 방식의 재설계도 시급하다고 했다. 결론적으로 투자 전문성과 운영 역량을 갖춘 전문성 높은 자본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저자는 자본과 기업이 한께 성장하기 위한 제언 10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해외 사업 확장 시 이 분야에 해박한 경험과 지식을 갖춘 사모펀드 포트폴리오에서 길을 찾을 것을 제안했다. 둘째, 사모펀드를 전략적 파트너로 삼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꿈꾸자고 했다. 셋째, 유능한 인재에 대한 철저한 보상이 기업을 효율적으로 성장시킨다고 했다. 넷째, 능력주의 문화 없이는 혁신도 없다고 했다. 다섯째, 인수 이후 2년이 기업 성패의 분기점이 된다고 했다.
여섯째, 인수 전에 기업과 사모펀드가 관계를 구축하고 혁신전략을 설계할 것을 촉구했다. 일곱째, 성과는 투명하게 공개할 때 비로서 제대로 된 관리가 가능하다고 했다. 여덟째, 투자성과가 우수한 직원이 오래 근무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아홉째, 성과에 책임지는 구조 없이는 자본도 신뢰를 잃는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진실한 소통만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가져온다고 강조했다.
조진래 선임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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