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랑 사귀어 봐” … 이런 농담도 ‘직장 내 성희롱’

이의현 기자 2023-05-30 16:42:09

직장 상사가 신입사원에게 나이 많은 직원과 사귀어 보라고 농담을 하는 것도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며 위자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8-2부(이원중 김양훈 윤웅기 부장판사)는 최근 모 대기업 여직원 A씨가 같은 직장 상사 B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에서 1심에 이어 원고 일부 승소로 판단했다. 

신입사원 A씨는 2021년 초 옆 부서 책임자인 B씨, 그리고 역시 다른 부서 직원 C씨와 처음으로 점심을 함께 했다. 이 날 A씨의 거주지가 화제가 되었고, A씨가 “○○역 쪽에 산다”고 하니 B씨가 “D씨도 그 쪽에 사는데 둘이 잘 맞겠네”라고 말했다. D씨는 당시 자리에 없었던 다른 부서 직원으로, A씨보다 20살 가량 나이가 많은 미혼남이었다.

B씨는 농담 반 진담반 식으로 A씨에게 “치킨 좋아하느냐”고 물었고 A씨가 “좋아한다”고 말하자 “D씨도 치킨 좋아한다. 둘이 잘 맞겠네”라고 말을 이어갔다. A씨가 어색한 분위기에서 벗어나려 “저 이제 치킨 안 좋아하는 거 같아요”라고 말했지만 B씨는 “그 친구 돈 많다. 그래도 안 돼?”라며 선을 넘는 언행을 지속했다.

이런 사실이 회사에서 공론화되자 회사 측은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B씨에게 견책 3일 징계처분과 함께 다른 부서로 인사 발령을 냈다. A씨는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번 일로 정신과 치료를 받고 휴직까지 하게 됐다며 B씨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했다.

1심은 B씨의 발언이 성희롱이라고 판단하고 A씨에게 정신적 고통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B씨의 항소로 이뤄진 항소심에서도 재판부는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직장 상사가 ‘지위’를 이용한 성적 언동으로 상대방에게 성적 굴욕감 또는 혐오감을 느끼게 한 것은 ‘남녀고용평등법’이 금지하는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특히 A씨가 완곡하게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데도 계속 “돈이 많은 남성은 나이나 성격 환경 외모 등에 관계 없이 훨씬 젊은 여성과 이성 교제를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며, 피고의 발언은 여성인 원고가 성적 굴욕감을 느꼈겠다고 충분히 짐작할 만한 성적인 언동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B씨는 “노총각인 남성 동료에 관한 농담일 뿐, 음란한 농담과 같은 성적인 언동을 한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성희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행위자에게 반드시 성적 동기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위자료 300만 원을 판결했다.

 이의현 기자 yhlee@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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