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어르신 폄하 '그만' ...우리 모두 노인이 된다

조진래 기자 2023-08-01 08:49:34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한 청년좌담회에서 가볍게 내뱉은 말이 '노인 폄하' 발언으로 낙인찍혀 곤혹스런 상황에 빠졌다. 문제가 된 발언은 '남은 수명에 비례해 투표권을 행사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 아니냐'는 취지였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달 30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20·30세대 청년들과 가진 민주당 혁신위 좌담회 자리였다. 작금의 정치 현실에 대한 청년들의 의견과 평가를 구하고 당의 새로운 혁신 방향을 함께 논의하고 모색하는 자리였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이 자리에사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서인지 자기 아들과의 예전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자신의 둘째가 중학교 1학년 혹은 2학년일 때 자신에게 '왜 나이 든 사람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고 질문했다고 한다.

아들이 생각하기엔 자기 나이로부터 여명까지, 비례적으로 투표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으냐는 것이었고, 이에 김 위원장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1인 1표'라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맞는 말이다.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1대 1로 표결해야 하나"라고 넘겼다고 한다.

당장 여당인 국민의힘은 "충격적인 노인 비하 발언"이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공식 논평에서 "갈수록 곤두박질치는 민주당 지지율과 청년층의 외면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이 어르신 폄하와 막말인가. 당을 혁신하라고 만든 혁신위가 더욱 허무맹랑한 주장만 펼치니 혁신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하다"고 쏘아부쳤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의 '어르신 폄하 DNA'가 또다시 고개를 든다. 막말참사다.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고 적었고 김종혁 전 비대위원도 페이스북에 "그럼 돈 짧고, 외모나 학력 짧은 사람들 투표권은 어찌할까요. 이걸 말이라고 하시나요. 위원장님"이라고 적었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비판이 쏟아지자 민주당 혁신위는 급히 입장문을 냈다. 김 위원장 아들이 중학생 때 낸 아이디어에 불과한데 그걸 '1인 1표'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부인한 것으로 호도하지 말라는 투였다. 그러면서 "중학생의 아이디어를 왜곡해 발언 취지를 어르신 폄하로 몰아가는 것은 사안을 정쟁적으로 바라보는 구태적인 프레임이자 갈라치기 수법”이라고 맞받았다.

우리 정치인들의 말이 때와 장소에 따라 바뀌고, 강조점이 달라지는 사례를 우리는 누차 보아 왔다. 갈라치기가 일상화된 정치 풍토에서 적의 한 마디 한 마디는 늘 그 진위를 무시당한 채 떼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날 모임이 청년들과의 대화이다 보니. 김 위원장이 청년들의 기를 살려주고 가치를 높여주려 한 발언이었음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를 치켜 세우려 또 다른 누군가를 폄훼하는 듯한 말을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상식과도 거리가 멀다. 청년들의 치기를 받아주려 우리 선배 세대를 폄하하는 것은 더더욱 가당치 않다. 그들이 도마 위에 올렸던 그 '노인'들은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민주화를 일군 주역들이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온 몸으로 만든, 당당히 존경받고 대접받아야 마땅한 어른들이다. 

말로는 인권과 민주주의, 차별없는 국민의 삶을 얘기하는 민주당이 이런 오해받기 십상인 발언을 했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자기부정이다. 속내야 어떻든, 국민을 위한다는 정치가 이렇게 국민을 업수이 여기는 모양으로 내비치는 것이 우리 정치의 현실이다. 정치인들의 언행이 조심스러워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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