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출퇴근 도중에 횡단보도에서 일시 정지하지 않았다가 사고를 당했다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없다는 행정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정상규 수석부장판사)는 횡단보도 교통사고로 숨진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20년 9월에 자전거로 퇴근하다가 보행자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던 행인과 부딪혔다. 당시 A씨는 내리막인 횡단보도 앞에서 속도를 줄이거나 일시 정지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충돌로 행인은 12주 이상의 치료를 요하는 중상을 입었고, A씨는 자전거에서 길바닥으로 떨어져 뇌출혈 증상을 보이다가 이튿날 사망했다. A씨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A씨가 업무상 재해로 사망했다며 유족급여와 장의비를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행정소송을 냈다.
소송의 쟁점은 보호자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A씨의 범칙 행위가 산재보상법의 보호에서 배제되는 범죄행위인지 여부였다. ‘산재보상법 제37조는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가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질병·장해·사망은 업무상 재해로 보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여기서 말하는 ‘범죄행위’에 도로교통법상 범칙 행위도 포함된다는 대법원 판례를 인용하면서, 행인이 건너고 있는데도 횡단보도 앞에 일시 정지하지 않은 A씨의 행위는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며 공단 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유족 측은 “당시 횡단보도가 내리막이어서 A씨가 행인을 보고도 피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현장 사진을 봐도 경사가 자전거를 일시 정지하거나 보행자를 보호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파르지 않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히 “도로가 내리막이라는 사정은 오히려 평소 이 도로로 출퇴근해 그 환경을 잘 알고 있던 A씨의 주의의무를 가중하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박성훈 기자 shpark@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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