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쌓은 ‘노후재산’을 축내는 최대 주범은… '과신'과 '인지 장애'

이의현 기자 2024-12-11 09:13:14
사진=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돈을 벌고 불리는 것 이상으로, 돈을 지키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고 어렵다. 은퇴 이후에는 더더욱 그렇다. 만의 하나, 순간의 실수로 돈을 날리게 되면 회복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많지 않기에, 은퇴 이후에는 돈을 지키는 데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렵게 축적해 둔 노후 재산을 위협하는 ‘숨어 있는 적’ 들이 있다.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장(전 매경ECONOMY 편집장)은 노후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두 개의 적으로 ‘인지 장애’와 ‘과신(過信)’을 들었다.

이 원장은 흔히 노후재산을 축내는 주범들로 물가상승이나 장수위험, 수익률 순서위험(Sequence of Returns Risk), 자녀 위험 등을 꼽지만, 다행히도 은퇴 이후에 찾아올 수 있는 이런 위험들은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는 수단이 전혀 없지는 않다고 말한다. 

인플레이션 위험을 줄이기 위해 물가연동채권에 투자하거나, 장수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종신연금보험에 가입할 수도 있다. 은퇴 이후 갑자기 불어닥친 불황으로 초기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돌아설 경우에 발생하는 ‘수익률 순서위험’과 관련해서도 대응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채권 중심으로 현금흐름 위주의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거나, 다양한 수익원 확보로 위기를 넘길 수 있다. 자녀 위험을 막기 위해선 저당권 방식이 아닌 신탁방식의 주택연금에 가입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원장은 이런 ‘보이는 위험’보다, 노년기에 노후재산을 축낼 수 있는 숨어 있는 주범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바로 과신(過信)과 인지장애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들 요소가 어떻게 노후재산을 위협하는 지에 관해 설명한 해외 연구논문을 소개했다.

스위스 루가노대학 마존나 교수와 미국 조지타운대학 페라치 교수는 2022년에 미국 ‘건강은퇴연구(HRA)’ 자료를 토대로 인지장애가 노인복지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 평균 67세에 20% 이상의 기억력을 상실한다고 밝혀냈다. 

두 연구자는 자신의 인지장애 사실을 인지하는 못하는 쪽과 인지한 쪽의 재산손실 정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인지장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쪽의 재산손실 규모가 훨씬 컸다. 손실규모는 평균 6%에 달했다. 특히 재산 상위 50% 노인층에서 재산손실 규모가 더 컸다. 

인지장애를 알고 있는 쪽보다 모르는 쪽에서 주식형 금융자산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재산손실이 더 많았다. 연구자들은 “인지장애를 인식하지 못한 상황에서, 과거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무리하게 투자를 한 탓”이라고 결론 지었다. ‘과신’ 탓이라는 것이다.

미국 자산운용회사인 뱅가드도 2023년에 비슷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뱅가드 연구원과 4명의 대학 교수들이 재정관리 권한 이양 시점이 노후재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분석했다. 55세 이상인 뱅가드 고객들 가운데 2489명이 분석 대상이었다.

연구 결과, 권한 이양 시기가 늦을수록 재산손실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체 분석 모델에 따른 추정 손실 비율은 무려 18%에 달했다. 너무 빠른 이양도 좋지 않았다. 보수적인 자산운용과 관리 수수료 비용 때문에 기회비용이 뒤따른 탓이다.

최적의 권한 이양 시기는 ‘인지장애를 인식하면서 재정관리 능력을 막 잃어가기 전’이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그럼에도 실제로 권한 이양이 늦어지는 것은 자신의 인지장애를 알고 있으면서도 권한 이양을 꺼리기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원장은 “인지장애는 투자 관련 의사결정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금융착취와 금융사기에도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얄팍한 지식과 경험이 과신으로 이어질 경우, 노후 재산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위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인지장애 여부를 수시로 검사 받고, 시장을 이길 수 있다는 자만심을 버리는 게 상책”이라고 강조했다. 노후재산을 온전히 지키려면 시장과 ‘맞짱’을 뜨는 과오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원장은 효율적인 노후재산 관리를 위해 재산을 신탁회사에 맡기는 방안을 제시했다. 상속과 관련된 불협화음과 불확실성을 차단하기 위해 배우자와 자녀들과 사전에 협의하는 등 ‘사전준비’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의현 기자 yhlee@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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