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Cu)’가 원인이 되어 생기는 질환이 있다. ‘윌슨병’이라는 것인데, 구리를 과잉 섭취해 몸에서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인체 여러 기관을 망가뜨리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특히 특별한 이유없이 아이의 간 수치가 높으면 이 병을 의심해 봐야 한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소화기영양과 고홍 교수가 <세브란스 소식>을 통해 전한 윌슨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일문일답으로 들어 보자.
- 윌슨병은 인체 어느 부위에 어떤 문제가 생기는 질환인가. “윌슨병은 구리의 대사장애로 간이나 뇌 등에 구리가 쌓이는 선천성 질환이다. 구리는 철의 운반과 산화, 뼈의 무기질화, 세포 호흡 등을 보조하는데, 아주 소량이지만 인체에 꼭 필요한 영양소 중 하나다. 다양한 식품에 포함되어 있어 대부분 체내 필요량보다 더 많이 섭취한다. 이렇게 과잉 섭취한 구리는 간에서 대사되어 대소변으로 배출되는데, 이 구리의 배출에 관여하는 ATP7B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인해 구리가 밖으로 제대로 배출되지 않아 인체 여러 기관이 망가지는 희귀 유전질환이다.”
- 구리가 제대로 배출되지 않으면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구리는 금속성 물질이라 인체에서 잘 녹아 없어지지 않고 혈관을 떠돌다가 간이나 뇌, 안구, 신장 등에 쌓이면서 장기를 서서히 망가뜨린다. 구리가 가장 먼저 축적되어 가장 먼저 손상되는 곳이 간이다. 간경변증이나 간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만성피로 같은 증상에 이어 간 손상이 심해지면 황달과 복수 등이 발생한다. 구리가 뇌에 쌓이면 말이 어눌해지거나 인지기능이 저하되고 손발이 떨리며 침을 흘리는 신경학적 증상이 나타난다. 안구에 침착되면 실명에 이를 수도 있다. 신장기능이 망가져 투석치료를 받는 환자도 있다.”
- 윌슨병은 어릴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나. “태어날 때부터 구리 대사장애가 발생하지만, 영유아기에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구리가 어느 정도 쌓여야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대체로 열살 전후에 간손상으로 인한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해 청소년기를 지나면 신경학적 증상까지 발생한다. 환자마다 편차가 커 성인이 되어서야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요즘에는 소아비만클리닉, 성장클리닉 등이 보편화되면서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검진을 통해 간수치 이상을 발견하고 윌슨병을 조기에 진단받는 사례가 크게 늘어나고 있다.”
- 희귀질환이라면 진단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증상이나 간 기능 평가, 24시간 소변 구리 검사 등을 종합해 추정할 수 있다. 유전자검사로 ATP7B 유전자 돌연변이를 확인할 수 있어 진단 자체는 어렵지 않지만 희귀 질환이다 보니 정확한 진단이 늦어질 수 있다. 최대한 빨리 진단하고 치료를 시작해 장기 손상을 최소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창 뛰어 놀 열 살 전후의 아이가 유독 피곤함을 많이 느낀다면 간기능 평가를 해보고, 특별한 이유 없이 간수치가 높으면 상담을 받아보는 것이 좋다. 윌슨병은 유전질환이므로 한 그 형제자매도 윌슨병 검사를 받아야 한다.”
- 몸속 구리를 약물로 녹일 수는 없나. “구리가 많이 함유된 음식 섭취를 조절하면서 약물치료를 받으면 큰 문제없이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 약제는 크게 구리배설제와 구리흡수억제제로 나뉜다. 구리배설제는 몸속 구리와 결합해 소변으로 내보내는 역할을 한다. D-페니실라민이나 트리엔틴이 사용된다. 구리흡수억제제는 아연 성분의 윌리진이라는 약물이다. 구리와 아연은 몸에서 경쟁적으로 흡수되므로 음식 섭취 전에 아연 약을 먼저 복용하면 구리 흡수를 억제할 수 있다. 주치의의 처방대로 약을 잘 복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 평생 약을 복용하는데 따르는 부작용은 없나. “대부분은 큰 부담 없이 안정적으로 복용할 수 있다. 정기 검진을 통해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평가하고, 필요 시 약제를 바꾸거나 용량을 조절하거나 보조 약제로 조절할 수도 있다. 대체로 1년에 한 번씩 24시간 소변검사로 체내 구리의 양을 확인하고 간수치와 간기능을 살펴보는데, 규칙적으로 약을 복용하고 성실하게 건강관리를 하면 약의 용량을 줄여갈 수 있다. 식사요법, 추천 식단, 식사 기록지 등이 담긴 윌슨병 식사 관리 안내 책자를 활용해 환자 스스로 구리 섭취를 적절히 조절하면 병의 진행을 막는 데 더욱 효과적이다.”
- 어릴 때 유전질환을 진단받을 경우 환자나 보호자에겐 큰 부담일 수밖에 없겠다. “요즘은 아이들도 인터넷으로 윌슨병에 대해 찾아볼 수 있다. 자기가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불치병에 걸렸고 간기능이 악화돼 간이식을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염세적이고 비관적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가족들의 지지와 사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제로 저도 열 살 전후의 어린 환자들이 오면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애정 표현을 한다. ‘약만 잘 먹으면 네가 하고 싶은 일 뭐든 할 수 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수시로 얘기해 준다. 어린 시절부터 많은 사랑을 퍼부어줘야 한다.”
- 윌슨병 보인자도 구리 제한 식이가 필요한가. “그렇지는 않다. 윌슨병은 상염색체 열성 유전질환이므로 보인자는 윌슨병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것이지, 병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구리 섭취를 제한할 필요는 없다. 다만, 배우자도 윌슨병 보인자라면 25%의 확률로 윌슨병 자녀를 출산할 수 있다.”
- 윌슨병 약은 임신 기간에도 복용할 수 있나. “윌슨병 약은 태아에게 영향이 없다고 알려져 있어 임신 기간에도 복용할 수 있다. 전문가들의 상담과 도움을 받으면 윌슨병 환자도 안전하게 임신과 출산이 가능하다. 구리 식이 제한을 철저하게 지킨다면 주치의와의 상담을 통해 임신 기간에 약의 용량을 줄이거나 잠시 중단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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