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 건강 위해 조기 퇴직? … 오히려 은퇴 늦춰야 더 건강해진다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이 전하는 '하이브리드 퇴직' 이렇게
이의현 기자 2025-03-21 09:27:14
사진=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당히 많은 직장인들이 “먹고 살 만큼만 돈이 생기면 당장 회사 때려 친다”고 말한다. 하지만 말처럼 그렇게 조기 퇴직이 쉽지는 않다. 일정 수준의 경제적 안정이 담보되어야 결정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다 어느 새 퇴직 시기를 맞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즘은 건강을 고려해서 조기퇴직을 결행하는 퇴직자들도 종종 보인다. 좀 더 윤택한 노후생활을 위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일하기 보다는 건강을 지키는 게 남는 장사라는 믿음 때문이다. 

이제경 100세경영연구원 원장은 그러나 “경력 관리는 100세 인생설계에서 중요한 영역”이라며, 건강을 위한다면 오히려 퇴직을 앞당기기 보다는 늦춰야 한다고 힘 주어 말한다. 그는 “일은 노후를 지켜주는 보약이나 다름없다”고 했다.

이 원장은 최근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은퇴자금을 모을 수 있고, 일을 통한 성취감과 만족감을 맛볼 수 있으며, 동료들과 호흡을 같이하면서 외로움과 우울증 등을 날려버릴 수 있어 정신건강에도 좋다”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건강을 생각해서 조기은퇴를 고려하고 있다면, 영국 세인트앤드루스대학교 조 마이리 해일 연구팀의 논문을 한 번쯤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55~75세 미국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이 보고서의 결론은 ‘오래 일할수록 정신건강이 좋다’는 것이다.

해일 연구팀은 HRS(미국 건강 및 퇴직연구) 자료를 토대로 1996년부터 2014년까지 2만 여명의 직장인을 추적 관찰한 결과, 68세 이후 퇴직자그룹이 67세 이전(61~67세) 퇴직자그룹에 비해 인지기능 저하 속도가 무려 30% 가량이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노후에도 일을 하는 게 것이 더 좋다는 결론이었다.

해일 연구팀은 교육 수준과 직업 복잡성, 경제여건 등이 인지기능에 영향을 미치는지도 함께 살펴봤지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스트레스를 더 많이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직업에 종사하거나, 열악한 재정상태에 놓인 상황에서도 68세 이후까지 일한다고 해서 인지기능이 더 나빠지지 않는 것으로 조사된 것이다.

결국, 건강을 지키기 위해 조기 퇴직을 하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닐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이 원장은 “오히려 건강을 지키려면 조기퇴직 대신 오래 일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설명했다.

이 원장은 해일 연구팀의 결과를 뒤집어 접근하는 연구도 소개했다. 정신건강이 근속연령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한 UCLA 올리비아 로시에비츠 연구팀의 연구 결과다. 이들은 사회적 불안과 우울증 증상이 근무시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연구팀은 이 같은 장애를 앓고 있는 250명의 실업자를 대상으로 48주 동안 추적 관찰한 결과, 인지행동치료(CBT)를 제공받은 그룹이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근무시간이 늘어났음을 확인했다. 우울증과 사회적 불안장애가 근속연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근무시간이 사회적 불안과 우울증 증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함께 분석했지만, 결과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년을 넘겨 일한다고 해서 정신건강이 나빠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원장은 “은퇴자금을 크게 걱정하지 않을 만큼 재무적 독립을 이뤘다고 해도, 궂이 조기은퇴를 선택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고 조언했다. 그는 “오래 일하는 것이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된다”면서 정규직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해일 연구팀도 주당 25시간 이상 근로자를 일하는 집단으로 분류했다고 전했다. 

이 원장은 그러면서 “현재 하는 일이 너무 버겁거나 건강을 해칠 정도라면 내 몸에 맞는 일을 찾는 게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노후 일자리는 무엇보다도 건강을 해치지 않아야 한하며, 자신이 잘 할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되고,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다고 했다. 

이 원장은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희생한다. 그런 다음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 돈을 희생한다’는 달라이 라마의 명언을 언급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 정규직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목적 있는 삶을 위해서라도 ‘하이브리드 퇴직’을 고려해 볼만 하다”고 권했다.

그는 “노후에는 일이 놀이나 다름없다”면서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면 노후에도 일하는 게 좋고, 노후에도 일할 수 있으려면 젊었을 때부터 우울증과 사회적 불안장애에 걸리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의현 기자 yhlee@viva2080.com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