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가업상속 공제제도 개편 시급하다 (하)

'가업 승계 선진국' 비해 과도한 규제 해소부터
조진래 기자 2023-06-27 07:38:53


우리나라에도 ‘가업상속공제 제도’가 있다. 하지만 실제 공제 건수는 기대에 많이 못 미친다. 요건이 현실과 동떨어지게 맞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이상 경영하면서 50% 이상 지분을 유지하고, 전제 기업의 영위기간 중 50% 이상을 대표이사 등으로 종사해야 하는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선진국처럼 원활한 가업 승계를 이루려면 실효성 있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 가업상속공제 이후 의무요건도 걸림돌
어렵게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더라도 다음에는 사후 규제 요건을 또 채워야 한다. 가업상속 후 5년 동안 가업용 자산의 40% 이상을 처분하거나(자산유지) 상속인이 가업에 종사하지 않는 경우(가업종사), 상속인의 주식 지분이 감소한 경우(지분유지), 근로자 수와 총급여액이 5년 평균 90%에 미달하면 안된다. 

그럴 경우 사유 발생일이 속하는 달의 말일부터 6개월 이내에 공제받은 금액을 상속개시 당시의 상속세 과세 가액에 산입해 이자상당액을 포함해 상속세를 신고 납부해야 한다. 그나마 예전에는 의무기간이 7년이었으나 지금은 2023년 1월 1일 시행 이후 상속이 개시되는 분부터 적용된다. 2023년 1월 1일 현재 사후관리 중인 경우도 적용된다.

일정 기간 기존 업종을 유지하도록 한 부분도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초 의도는 상속인이 자의적으로 업종을 바꿔 ‘가업’이 아닌 다른 일로 빠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지만, 최근처럼 변화의 속도가 빠른 경영환경에서 고리타분하게 예전 가업만 운용하라는 주문은 비현실적이라는 얘기다.

상속대상 기업의 경영과 관련한 탈세 또는 회계부정을 저질렀을 경우 혜택이 배제되는 조항도 부분 손질이 필요해 보인다. 상속개시 전 10년부터 상속 개시 후 7년 까지가 대상인데, 의무기간을 단축해 기업 스스로의 투명경영을 독려하되 문제 발생시 무겁게 책임을 매기는 쪽이 현실적이라는 얘기들이 있다.

참고로 탈세의 경우 포탈세액이 3억 원 이상이고 납부할 세액의 30% 이상인 경우 또는 포탈 세액이 5억 원 이상이 대상이다. 회계부정은 재무제표상 변경 금액이 자산 총액의 5% 이상인 경우를 말한다.

◇ 상속세 부담 완화 불구, 효과는 ‘제한적’
1997년에 ‘가업상속공제’가 도입됐지만 2016년~2020년 이용 건수는 평균 92.8건에 공제금액은 2886억 원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에 강소기업 천국 독일은 9995건에 20조 원 수준이었다. 2022년에 실효성 있게 고치겠다며 세법까지 손질했으나 매출액 5000억 이하, 10년 이상 피상속인 경영 등 엄격한 요건 탓에 제대로 가능하지 못하고 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가업’상속제도를 ‘기업’상속공제 제도로 바꾸고 모든 기업이 대상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상속인이 2년 이상만 기업을 보유했다면 상속공제를 허용하고 공제율도 상한 없이 50~100%로 높일 것도 주장했다. 특히 신사업 진출에 걸림돌이 되는 ‘업종 유지 조건’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납세 유예제가 일본이나 독일처럼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가업승계의 걸림돌이다. 일본은 비상장 기업에 80%를 납세 유예해 주고 있다. 공식적으로는 최고 상속세율이 55%지만 실제는 11%에 그치는 이유다. 사후 요건을 강제하는 우리와 달리 상속·증여세 없이 제3자에 기업을 승계시키기도 한다. 

세수 보다는 ‘기업 승계’에 따른 고용 유지와 기술 발전 등의 효과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독일도 마찬가지다. 상속세 명목 최고세율은 30%지만 실제는 제로(0)에서 많아야 4.5%에 그친다. 그 역시 가업승계 때 85%가 특별공제되기 때문이다. 영국도 실제 부담 최고세율이 높아야 20% 안쪽이다. 네덜란드와 아일랜드, 스페인도 모두 4%를 넘지 않는다. 

◇ “이래 놓고 가업승계 하라고?”
2019년에 세제공제 기업의 사후관리 기간을 10년에서 7년으로 단축하는 등 일부 개선이 있었다. 하지만 기업들은 여전히 선진국에 비해 과도한 규제를 문제 삼는다. 대상 범위 선정이 너무 자의적이고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 한다.

증여세과세특례제도가 그 가운데 하나다. 과세표준 30억 원 까지는 10%, 100억 원 까지는 20%의 낮은 증여세율을 적용받을 수 있지만 여기서 개인기업은 제외된다. 주식할증평가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최대주주 등으로부터 주식을 상속받을 경우 평가액에 할증 평가하는 것이지만 중소기업은 배제된다. 그나마 상속세 납부 기간을 5년에서 10~20년으로 연장해 주는 연부연납제도는 숨통을 터 준다.

왠만하면 개선되지 않는 과세표준구간과 세율구조를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일부 개선했다고 하지만 정작 최고 세율구간이 ‘50억 초과’에서 ‘30억 초과’로 낮아져 세 부담은 오히려 더 커졌다는 게 기업인들의 하소연이다. 정부가 가게나 기업의 원활한 가업승계를 정말로 지원하려면 기업 승계를 원하는 이들의 진솔한 목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조진래 기자 jjr8954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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