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의대 정원 늘리기 앞서 해결해야 할 것 들

조진래 기자 2023-10-25 08:29:17

정부가 조만간 의대 정원을 크게 늘릴 것이라고 한다. 그 동안 꽁꽁 묶어 두었던 규제라 언젠가는 풀어야 할 과제임이 분명하다. 의료인 수가 OECD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의료 사각지대가 적지 않다는 점도 의대 정원 증원의 한 배경이다. 특히 고령화 시대를 맞아 의료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아 정원 증원의 당위성은 대체로 인정된다. 하지만 의대 정원을 늘리기 앞서 먼저 해결을 추진해야 할 과제들이 너무 간과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해결 과제는 역시 ‘쏠림’이다. 진료 과 별로 부익부 빈익빈이 극심하고, 수도권에 초 집중된 의료 지역편향이 큰 문제다. 전국 주요 국립대 교수회 회장들 모임인 거점국립대학교수회연합회가 25일 의대 증원 정책 추진에 브레이크를 건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의대 쏠림’이 이미 심각한 상황에서 자칫 학문의 다양성이 훼손되며 엄중한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정원 증원에 앞서 의사의 수도권 편중 해소  방안부터 마련되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묻지말고 의대’ 현상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국정검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이미 최근 3년간 전국 10개 국립대 의대에 정시모집으로 입학한 학생 5명 가운데 4명 이상이 재수생 이상 N수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의대 진학을 위해선 기꺼이 재수든 삼수든 감수하겠다는 젊은이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은 의대 정원 확대 방침이 기정사실로 확인된 올해부터 더욱 확산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 이미 반수생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문제는 이렇게 ‘의대가 아니면 죽어도 안된다’는 분위기 속에서 정작 의료계는 극심한 부익부 빈익빈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역별 의사 소득이 최대 8700만 원이나 차이가 날 만큼 수도권과 비 수도권 의사들의 소득 격차가 극심하다. 2021년 기준으로 치과와 한의원을 제외한 순수 의료업의 평균 사업소득 신고액은 3억 4200만 원이었는데, 17개 시도 중 울산 지역 개업의의 평균 소득(3억 8200만 원)과  제주 개업의 소득(2억 9500만 원) 간 차이가 이 만큼 컸다.

그나마 평균 소득이 이 정도되니 너나 없이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의사가 되려는 것일 것이다. 하지만 3억 8200만 원을 버는 울산에서도 개업 때 빌린 대출금 이자도 값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의사들도 있을 것이고, 환자가 없어 직접 고객을 찾아 나서는 의사들도 있을 것이다. 더욱이 2021년 기준 전국 4만 1192개 병·의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2만 2545곳이 수도권에 몰려 있다. 서울이 1만 5419곳, 경기도가 5953곳에 이른다. 

한 때 KTX 등 교통망이 크게 확대되면서 지역병원들의 역발상 경쟁력이 기대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누구나 한 시간이면 서울이나 수도권의 브랜드 병원을 찾을 수 있게 되면서 이들 지역 거점 유망 병원들도 현재는 거의 개점휴업 상태다. 비 수도권 의료인들도 3억 원이 넘는 소득을 버는 데도 수도권에만 의사가 집중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결국 방법은 하나다. 지역 의료 체계를 재정비하고 육성하는 것이다. 국립 의학전문대학원 같은 공공의대 설립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누구나 의대에 가려 하고 수도권에 취업 또는 개업하려 하다가는 의료 네트워크의 수도권 편중, 묻지마 의대 지원 같은 난제들은 해결할 수 없다. 지역의료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개선책을 마련해 공론화하고 폭 넓게 의견을 수렴해 실효성 있는 지원 방안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의사 정원 확대가 자칫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형편이 어려운 의료 약자들을 보살피길 원하는 ‘참의사’ 보다는, 돈 많이 벌어 풍족한 삶을 살기 원하는 그저 머리 좋은 젊은이들의 노후 방편을 보장해 주는 정책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더욱이 지금과 같은 ‘의대 쏠림’은 결국 부모와 대학과 사회가 부담할 사회적 비용을 늘리는 것이기도 하기에 더더욱 실효성 있는, 최소한의 의료계 균형  발전 방안이 먼저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