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은행 이자잔치를 은행 탓으로만 돌릴 수 있을까

조진래 기자 2023-11-07 17:08:06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은행권의 막대한 수익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다”고 말했다. 서민들은 하루 벌어 하루 살기가 버거운데, 은행은 앉아서 편하게 이자 장사만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자기들끼리 돈 잔치를 벌이고 있어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다는 것 쯤으로 이해된다.

추 부총리는 이런 상황의 배경으로 최근의 가파른 가계대출 증가와 금리 상승을 들었다. 어려워진 경제 상황 탓에 가계 대출이 크게 늘었고 금리까지 가파르게 올라 은행들이 막대한 이자수익을 올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금융권도 세간의 이런 비판을 엄중히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은행권의 수신경쟁을 점검하겠다고 했다.
 
추 부총리의 이런 언급은 결론적으로 매우 부적절하다. 대출을 쓸 수 밖에 없는 서민과 중산층의 어려움을 타개해야 한다는 충심은 십분 이해된다. 하지만 은행이 이익을 안 내려고 해도 안 낼 수가 없는 시장 상황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마치 은행들이 제 역할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투로 곡해되어 들릴 수 있게 얘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물론 은행들이 그 막대한 수익으로 성과급 잔치를 벌이는 것은 국민들 보기에 불편하다. ‘상생'의 차원에서 서민과 자영업자의 금융 부담을 낮춰주는 게 도리인 것이 맞다. 은행의 공공성이 그런 것이다. 그렇지만 ‘자율’과 ‘책임’이라는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들면서까지 시장을 강제로 재배분하려는 것은 관치(官治)와 다름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금융기관, 특히 은행을 ‘전가의 보도’ 마냥 늘 활용해 왔다. 산업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도 은행의 힘을 빌어 밀어 부쳤고, 은행 돈은 공공의 수익으로 간주해 어떻게든 빼앗아 가려 했다. 호황이든 불황이든 늘 정치의 시녀 역할을 강요해 왔다. 예전에는 눈에 드러나게, 지금은 조심스럽게 추진된다는 차이 뿐이다.
 
국내 은행들의 글로벌 경쟁력이 크게 뒤쳐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바닥 수준의' 자율성 때문이다. 자기자본 규제로 묶고, 업종 전문화로 묶고, 산업자본의 참여 제한으로 묶고, 늘 그런 식이니 은행은 스스로 성장할 기회를 단 한번도 가져 보질 못했다. 은행권의 비 이자 수익 비중이 10% 언저리에 그치는 이유를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국내 은행들이 ‘이자장사’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 것도 사실은 정부가 정치권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혁신을 하려 해도 비 금융업 진출을 가로막고 산업자본의 참여를 원천봉쇄하는 금산분리 논리가 수정되지 않는 한, 우리는 5년 후, 10년 후에도 도돌이표 비판만 하며 허송세월을 보내야 할 지 모른다.

비 이자 수익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정작 그런 수익을 낼 수 있는 루트를 모두 막아놓은 것이 정부와 정치권이다. 그러고서 '혁신'과 '상생'을 강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적어도 은행권에 고통분담과 혁신을 강요하려면, ‘정책’의 잣대를 들이 밀어야지, 국민 감정에 편승해 재단하려 해서는 안될 일이다.
 
비 이자수익 비중을 늘려야 한다면서 이자 수익 부분을 억지로 줄이려 해선 안될 것이다. 황금거위의 배를 가르는 일과 다르지 않다. 정책의 전환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정부와 정치권의 시장, 그리고 은행 경영 개입은 언제든 되풀이될 수 있는 불가항력적인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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