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의료사고 시 의사 형사기소 면제, 누굴 위한 것인가

조진래 기자 2024-02-01 17:32:27

의료사고가 발생할 경우 해당 의사의 형사 기소를 면제하는 특례법을 정부가 추진한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의료 사고가 났는데, 의사의 책임을 면하게 해 주겠다니 환자단체와 시민단체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특혜’라며 즉각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도 온당치 못한 일이다. 이런 발상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정부가 ‘필수의료 정책패키지’라는 이름으로 밝힌 방안에 따르면,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 조치는 모든 의료인의 보험·공제 가입을 전제로 추진된다고 한다. 의료사고로 인해 의사가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처해질 경우, 종합보험이나 공제조합 가입이 되어 있다면 공소 제기를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의료사고처리특례법’까지 서둘러 제정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불필요한 의사 소환 조사를 자제하고, 중과실이 없다고 인정되면 형을 감면해 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특례법 제정 전에도 수사 절차를 대폭 개선해 의사들의 불편함을 덜어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면서 ‘환자가 동의하지 않거나, 의사나 의료기관이 조정·중재 참여를 거부했을 때는 형사처벌 특례법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예외 조항을 걸었다. 앞 뒤가 맞지 않는 짜집기 정책이다. 

특례를 적용받는 대상도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채, 설익은 내용부터 서둘러 발표하는 우를 범했다. 구체적인 것은 모두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나중에 논의해 처리하면 된다며 한가한 입장만 내보였다. “의료 사고 시, 국민이 신속하고 충분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는 전제로 논의 중”이라는 당국자의 말이 와 닳지 않는다.

정부가 이번에 특례법에 담겠다고 하는 내용들은 의료계가 늘 요구해 왔던 것 들임은 주자의 사실이다. 의사단체 등은 그 동안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가 온전히 법적 책임을 떠안았다며, 의도치 않은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처벌을 받지 않도록 하는 ‘특례법’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꾸준하게 주장해 왔다.

하지만 환자나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가 명백히 ‘의사 편의, 환자 홀대’라며 거북스러워 한다. 환자의 안전과 생명은 뒷전이고, 의사들의 요구만 일방적으로 수용한 ‘기울어진 의료정책’이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법’으로 해결하려 들면, 의료 지식이 부족하고 현장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환자 측에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환자단체연합회 등이 의료사고 입증 책임을 의사에게 지워야 하며, 특히 이번 특례법이 환자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고의·부주의·부실 진료에 대한 ‘면책특권 보장법’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낸 것도 이 같은 우려에서다. 대한의사협회가 특례법 제정을 환영하면서 그 적용 범위에 사망사고 및 모든 진료과목을 포함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파장은 더욱 커지는 양상이다. 

급기야 환자단체들은 논의 중인 ‘의료분쟁 제도 개선 협의체’에서도 탈퇴할 것을 선언했다. 정부의 설익은 조치가 자칫 의료계를 마비시키는 상황에 까지 이르게 하지는 않을 지 걱정이 앞선다.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로 선의의 피해자가 나와선 안되겠지만, 유독 의사들만을 배려한다는 인상을 주면서까지 특례법을 강행하려 한다면 이는 온당치 못한 처사다.

의료계의 의대 정원 확대 문제 등 최근 의료계 현안들과 맞물려, 정부와 의료계 간 모종의 뒷거래의 결과물이 이번 특례법안은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만일 그렇다면, 당연히 안될 일이다. 겉으로는 그렇게 정원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고 강경한 추진 의지를 비추더니, 결국 의사의 사고 책임을 경감해 주는 카드와 맞바꾸는 일이라고 한다면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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