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고령화 시대에 '1차 의료' 강화는 필수… '의사 파업' 합리적 타협점 찾기를

조진래 기자 2024-02-12 13:58:40

의사단체들은 집단행동에 나설 채비이고 정부는 초강경 대응을 예고하고 있다. 집단으로 병원 문을 닫고 진료를 거부하겠다는 의사들과, 그럴 경우 면허 취소라는 극단적인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다는 보건 당국 사이에게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특히 지난 2020년 의료계 파업 때 어슬프게 타협 했다가 낭패를 보았다며, 두번 다시 그런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태세라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운영위원회는 지난 7일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의대 증원 저지를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비대위원장도 선출했고, 설 연휴가 끝나는 대로 본격적인 집단행동에 들어갈 것을 결의했다. 당장 15일에 전국에서 의대 증원 반대 궐기대회를 열고, 17일에는 서울에서 전국 의사대표자회의를 연다는 계획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도 1만 여명의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에 동참할 것이라며 압박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파업 참여 의사들에 대한 의사 면허 박탈을 포함해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방침이다. 의료법에 의거해 진료 거부 의사들에게 업무 개시 명령을 내리고,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자격 정지뿐만 아니라 징역형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업무개시명령 위반 시 의사들이 몸담은 의료기관도 1년 이내 영업 정지가 내려질 수 있다며 전방위 압박 중이다.
 
정부는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추진으로 인한 집단휴진 사태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응급의료법과 공정거래법, 형법(업무방해죄) 등을 적용해 파업 참여 의사들의 면허 취소도 적극 검토 중이다. 당시에는 파업을 이끌던 의협 회장만 공정거래법과 의료법 위반으로 면허 취소 조치를 내렸으나 이번에는 그 대상을 더 확대하겠다는 의지다.

복지부는 현재 ‘경계’ 단계인 보건의료 위기 단계를 ‘심각’ 단계로 올릴 경우에 예상되는 의료 체계 공백 등에 대해 구체적인 대응 방안을 내부 검토 중이다. 이번 만큼은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의사단체의 힘 겨루기를 그대로 보아 넘어가지 않겠다는 결의다. 이번에도 밀리면 지속적인 의사 정원 확대 정책이 발목 잡힐 것이란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사 단체들과 '충분한' 협의를 갖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많이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의사 정원을 어느 수준까지 늘릴 것인지에 관해선 '충분한' 의사 교환이 부족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그렇더라도 의사들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볼모로 집단 행동을 한다는 것은 명백히 불법 혹은 탈법이다. 법적인 측면에서 판단해도 그렇다.

의사들의 총파업을 불법이라는 하는 데는 이유와 근거가 있다. 대한의사협회나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직능단체’이기 때문이다. 직능단체에는 파업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개원의들 역시 노동자로 볼 수 없고, 전공의들도 노동조합에 속하지 않아 법적으로 파업 요건을 구성하지 못한다. 전공의들은 수련의들이라 일부 근로자로 해석될 여지가 있지만 법적으로 근거가 미약하다. 그래서 2020년에도 전공의들은 휴가나 사직서를 내고 집단행동에 참여했었다.

모든 것을 떠나 의문이 드는 것은, 의사 증원이 그렇게 집단 파업이나 집단 휴원이 필요할 만큼 '결사항쟁'할 사안인가 하는 점이다. 때 마침 ‘동네병원’ 같은 1차 의료기관의 전문의 수는 인구 10만 명 당 1명 증가할 경우 국민 전체 사망률이 0.11% 낮아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서울대병원의 연구 조사 결과가 발표되어 주목을 끈다. 

앞서 미국에서도 2019년에 인구 10만 명당 1차의료 의사 수가 10명 늘면 51.5일만큼 평균 수명이 증가한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1차의료 기관의 의사가 많아지면 국민 건강도 나아지고 사망률도 낮출 수 있다는 논거가 된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대학병원 의존도가 워낙 높고 1차 의료 환경이 매우 열악한 나라이지 않은가.

이제 내년이면 우리나라도 초고령사회가 된다. 인구의 20% 이상이 65세 이상 노인이 되는 나라가 된다. 노인들이 가장 불편해 하는 것이 ‘의료 환경’ 임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다. 지금 의사 증원이 이뤄져도 실제 1차 의료 현장에 이들이 투입되는 것은 10년 후다. 10년 후면 우리 고령화율은 25%를 웃돌 수 있다. 합리적인 판단 하에 정부와 의사단체가 조기에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해 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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