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민생’을 지향한다면, 혐오와 복수의 정치로는 안된다

조진래 기자 2024-04-11 08:27:54

갈등과 반복, 혐오와 비방, 독설과 험담, 극한의 네거티브로 점철했던 4·10 총선이 드디어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범 야권이 200석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는 완승을 거두었다. 정부와 여당의 완패였다. 야권은 정권 심판론을, 여권은 야당 독주를 막아달라고 호소했는데, 국민들은 결과적으로 현 정부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다. 

선거 후 여야 모두 ‘국민의 뜻’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렇다고 협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후유증이 더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사생결단으로 상대방을 공격하고 물어뜯는 혐오와 복수의 정치가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지난 4년 동안 보여 주었던, 논리와 합리 대신 극한의 대립과 발목잡기에 열중했던 여의도 정치는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총선 기간 내내 여야는 앞다퉈 ‘민생’을 강조했다. 국민의 뜻을 헤아려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선거 결과에 취해, 혹은 결과에 충격을 받은 탓인지 “제대로 된 정치를 해 달라”는 국민의 뜻을 옳게 읽어내지 못하는 듯 하다. 승자는 “국민의 심판”이라고 강공 독주를 준비 중이고, 패자는 “국민의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며 하나마나 한 뒤늦은 반성에 고객을 떨구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어차피 선호하는 정당에 표를 던졌지만, 많은 국민과 유권자들은 대다수 국민의 뜻과 배반되는 ‘극단과 혐오와 복수의 정치’가 사라지길 바랄 것이다. 우리도 힘이 주어졌다고 그 힘을 무소불위의 것으로 착각해 또 다시 불통의 정치가 되풀이되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총선 이후의 정치권에 크게 두 가지를 주문하고자 한다.

첫째, 국민의 뜻을 겸손하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되, 반성은 치열하게 해야 할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특히 이번 완패가  ‘불통의 정치’에서 비롯되었음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한다. 과거 박근혜 정부와 이번 윤석열 정부의 원치 않은 고난은 기본적으로 최고통치자 스스로의 ‘불통’이 근본적인 원인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반대로 초거대 야당은 새롭게 얻은 힘을 보복과 복수에 탕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여의도 국회가 달라져야 한다. 지난 4년처럼 야당은 줄줄이 입법독재를 자행하고, 여당은 이를 사수하느라 ‘정치’를 외면하고, 대통령은 수시로 거부권을 남발하는 구태 정치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협치’ 까지는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대화가 되는 정치'를 보여주어야 한다. 증오와 복수심이 정치동력이 되어선 안될 일이다. 그것이 진정 국민의 뜻일 것이다.

둘째, 국민과 약속했던 민생 공약은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협치를 통해 이뤄내야 한다. 표를 얻기 위해 끄집어낸 ‘표퓰리즘’ 공약이나, 아니면 말고 식으로 뱉어낸 ‘공약(空約)’은 떨쳐버리고, 진정으로 국민의 생활과 안전과 건강을 챙기는데 몰두해야 할 것이다. 국민들께 약속했던 ‘민생’의 의미를 다시 새겨, 일관성 있고 합리적이면서 재정에 주는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의미있는 정책 공조를 해 나가야 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범 정치권 차원의 민생 회복 공조가 필요한 때다. 여야가 머리를 맞대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민생 회복 방안을 만들어내야 한다. 자기에게 얼마나 유리한지, 상대에게 타격을 주는 정책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지 말고, 총선 초기의 초심으로 돌아가 ‘국민에 가장 도움 되는 정책’을 추진하는 데 몰두해야 할 것이다. 좋은 정책이라면 상대방의 것이라도 빌려 이뤄낸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경제계도 ‘민생 국회’를 간절히 희망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앞으로 4년간 당리당략을 떠나 국가와 국민만을 바라보며 민생경제 살리기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읍소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국민의 대의기관으로서 일하는 국회, 민생 살리는 국회, 경제활력 높이는 국회가 되어달라”고 했다. 한국경제인협회도 “국민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상생과 화합의 정신으로 민생경제 안정과 경제 활력을 되살리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해달라”고 주문했다.

이제 원하든 원치 않든 ‘험치(險治)’를 걷어차고 ‘협치(協治)’에 나서야 할 때다.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정치적으로 풀려 했던 정치권이 받아 든 성적표가 이번 총선 결과임을 정부와 정치권 모두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승자든 패자든 ‘국민의 목소리’를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 말고, 제대로 듣고 이해하고 그 뜻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것이 진정한 국민의 뜻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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