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2080 시론] 고금리의 역설… 3년 반 만의 가계부채비율 하락도이 반갑지 않다

조진래 기자 2024-05-09 09:03:16

올해 1분기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비율이 98.9%로 3년 반 만에 100%를 밑돌았다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여전히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선 높은 수준이지만, 가계 안정성을 기대케 하는 시그널이 아니냐는 기대가 나올 법 한 소식이다. 

국제금융협회(IIF)가 9일 발표한 ‘세계 부채(Global Debt)’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를 기준으로 유로를 포함한 세계 34개 나라의 GDP 대비 가계부채비율 조사에서 우리나라는 98.9%로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2020년 이후 4년 넘게 이어온 '세계 최대 가계 빚 국가'의 불명예를 털어내지는 못했다. 홍콩(92.5%)과 태국(91.8%) 등이 뒤를 이었으나 우리와 격차도 여전히 꽤 크다.

하지만 2020년 3분기에 처음으로 100%를 넘어 100.5%를 기록한 이후 3년 반 만에 다시 90%대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일단은 최악의 상황에서는 벗어나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감을 갖게 만들어 주어 다행스럽다.

1년 전에 비해 2.6% 포인트나 낮아져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락 폭이 더 크다는 점도 우리 가계의 재무 위험이 이제 바닥을 친 것이 아니냐는 희망을 갖게 한다. 

하지만 100%를 밑도는 수치지만 절대적으로 여전히 높은 수치임은 부정할 수 없다. 통상적으로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80%를 넘기면 경제 성장이나 금융안정에 부정적 영향을 크게 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수치는 금융회사들의 타이트한 가계부채 관리 덕분인데, 반대로 말하면 그만큼 국민들이 가계를 유지하기엔 어려움이 더 커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이 가계부채비율 하락의 진짜 원인이 고금리 덕분이라고 하니 아이러니다. 그야말로 ‘고금리의 역설’이다. 실제로 빚을 더 내고 싶어도 금리가 너무 올라 엄두를 내지 못하는 바람에 가계부채비율이 낮아진 이유가 크다.

미국 연준의 금리 인하가 늦어지면서 우리 역시 당분간은 고금리 체제가 이어질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점이 발목을 잡는다. 향후 가계 전망을 더욱 불투명하게 만든 구조적 요인으로 계속 작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가계 빚이 줄거나 부채비율이 낮아지려면 소득이 오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거시경제나 기업 사정도 당분간 특별히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오히려 기업들은 올해 1분기 부채비율이 GDP 대비 123%로 게걸음을 걷고 있어 단기간에 나아질 기미가 없어 보인다. 기업이 살아야 가계가 살텐데 기업이 계속 죽을 쑤고 있으니 우려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코로나 시국에 정부 지원을 받아 저리에 빌린 대출금도 부메랑으로 돌아오며 중소 자영업자들의 폐업도 줄을 잇고 있다. 당분간은 재정 투입을 통한 가계 및 기업 지원이 지속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얘기다. 

무작정 퍼주는 지원책은 이제 수명을 다한 듯 하다. 국가 재정도 그리 넉넉치 못해 보인다. 그렇다면 선택과 집중 밖에 없다. 하려는 의지가 보이고, 그럴 잠재력을 가진 기업에 정책 집중도를 높여 기업이 다시 회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순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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