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KB금융지주와 하나은행이 잇달아 대한민국 상위 1% 부자들을 분석한 특별리포트를 발간했다. KB는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과 부동산자산 10억 원 이상을 모두 보유한 사람을 부자로 선정해 그 가운데 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개별심층인터뷰를 진행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이보다는 조금 소박하게 ‘최소 금융자산 10억 원’ 보유자를 부자로 정의했다. 두 금융그룹이 내놓은 대한민국 부자 리포트를 들여다 보자.
◇ 부자 인플레이션 “내가 부자야?”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2022년 현재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 보유자를 ‘부자’로 보았다. 하지만 부자라고 다 부자가 아니었다. 눈높이가 일반의 그것은 물론 평범한 부자들보다 더 높았다.
부자의 자산 기준을 100억 원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2020년 28%에서 2022년에는 46%로 껑충 뛰었다. 이제는 300억 원 이상은 돼야 부자라고 생각하는 부자도 10%를 넘었다. 무엇보다, 금융자산이 10억원 이상인 사람들조차 자신들이 부자라고 생각하는 비중은 30%를 채 넘지 못했다. 부자 타이틀도 인플레이션 된 셈이다.
◇ 부동산보다는 예·적금 비중 늘려 KB금융지주에 따르면 한국의 부자들은 최근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 위축의 영향으로 예금과 적금의 보유 비중을 꾸준히 높여 온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현재 ‘예적금’ 보유율은 2022년 84.5%에서 올해는 94.3%로 높아졌다.
작년 대비 10%p 가까이나 늘어난 셈이다. 부동산 보유율은 ‘거주용 외 주택’의 경우 전년 대비 1.0%p 하락했다. 2022년 하반기 이후 경직된 주택시장 분위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내 보인 것으로 읽힌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그러나 “작년 말 기준 우리나라 부자들이 보유한 총자산의 55%는 부동산이었다”면서 “최근 10년간 주택가격이 40% 가량 상승했고 부동산 펀드 규모도 7배 이상 성장한 것 등을 감안하면, 부동산 투자가 부를 일구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전했다.
◇ 상속형 부자가 3분의 2… 하지만 자산관리의 고수들 최근 10년 동안 대한민국 부자 10명 중 6명은 자수성가형 보다는 상속형 부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 부자들은 자산을 증식시키기 위해 시장 상황과 흐름에 맞춰 매우 적극적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불투명한 경제 상황을 고려한 듯, 욕심을 부려 한 푼이라고 더 수익을 내려하기 보다는 ‘자산 방어’에 치중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코로나 때 10% 이상 수익을 낸 부자는 10명 중 3명 꼴로 일반인의 2.4배에 달했다”면서 “부자들은 높은 수익률보다 ‘잃지 않는 투자’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전했다. 정부 정책을 비롯한 세제 변화, 국내외 투자 환경 변화 등 외부 변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것이다. 당장의 수익 변화에 일희일비 않고 좀 더 멀리 보고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 부자들이 투자 유망하다고 보는 대상은… 부자들은 누구보다 투자 환경 변화를 포착해 빠르게 판단한 후 투자 대상과 시기를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B금융에 따르면 이들은 1년 이내 단기 고수익이 기대되는 투자 대상으로 주식(47.8%)과 거주용 주택(46.5%)을 꼽았다. 금·보석(31.8%), 거주용 외 주택(31.0%)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또 향후 3년 정도 중장기적으로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투자처로 거주용 주택(44.3%)과 주식(44.0%)을 꼽았다. 거주용 외 주택(32.3%), 금·보석(32.0%)이 뒤를 이었다. 불규칙적 경제 상황 등을 고려해, 자산 가치 하락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더 큰 부동산보다는 안정적인 금·보석이나 주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 ‘영리치’는 ‘올드리치’와 다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40대 이하 부자인 ‘영리치’는 기존 부자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차이가 나는 것은 영리치의 경우 부동산보다 금융자산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10명 중 7명 이상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큰 해외 주식에 투자하는 등 리스크를 고려한 재테크에도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영리치는 또 가상자산에 대한 입장도 올드리치와 확연히 달랐다. 영리치의 20%가 가치 등락이 큰 가상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소 측은 “영리치는 외화자산 투자나 현물투자, 프로젝트 펀드 등 새로운 투자에도 적극적이었다”며 “영리치의 영향으로 부자의 투자 포트폴리오가 훨씬 다양하게 확장되고 있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 강남부자 vs 강북부자 현재 부자들이 많이 사는 동네는 서울 강남구와 서초구, 송파구 등 이른바 ‘강남 3구’와 용산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서울 4개 구에 부자의 절반 이상이 거주하는 셈이다. 이 밖에 종로구와 양천구, 성동구, 마포구 등 4개 지역에 3~5%가 살고 성북구와 영등포구, 광진구 등에 2~3%가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자산 규모 기준으로는 강남구와 서초구, 용산구 등 3개 지역이 10% 이상의 점유율을 보였다. 송파구와 종로구가 5~10%, 성북구와 성동구가 3~5%를 차지했다. 서울 강남구는 부자 수와 금융자산 규모에서 모두 독보적 1위였고 그 다음이 서초구였다. 부자들의 전통적인 선호 거주지역은 강남 3구지만 최근 10년 사이에는 마포구와 용산구, 성동구가 급부상했다.
강남 부자는 평균 자산 규모가 93억 9000만 원, 강북 부자는 82억 3000만 원으로 조사됐다. 부동산 비중은 강남 부자가 강북 부자보다 높다. 연 소득은 강북 부자가 평균 4억 4800만 원으로 강남 부자(3억 9600만원)보다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강남 부자가 강북 부자에 비해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자산을 모은 것으로 조사됐다.
◇ 부자들의 MBTI는 TJ, 슈퍼리치는 ESTJ 하나금융영영연구소가 사람의 성격 유형을 일반화해 보여주는 MBTI로 부자들의 특성을 파악해 보니, 금융자산 규모가 클수록 I(내향형)나 S(감각형) 비율이 적고 T(이성적),J(계획적) 성향이 높게 나타났다. 아무래도 TJ(사고·계획)형이 FP(감정·충동)형보다는 부를 축적하기에 용이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자산 100억 원 이상 또는 총자산 300억 원 이상을 보유한 슈퍼리치 집단에서는 ESTJ(외향·감각·사고·계획)형이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일반인들 가운데는 이 유형의 비율이 9% 정도에 불과했으나 슈퍼리치 중에서는 3배에 가까운 27%의 비율을 보였다. 이 유형은 흔히 지도자형 혹은 경영자형으로, 상당한 추진력과 철저한 자기관리가 특징이다.
◇ 부자들의 고민 ‘언제, 어떻게 물려주고, 절세는?’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부자들은 보유 자산 가운데 절반 정도를 노후 준비에 할애하고, 상속과 증여에는 각각 25%, 18%를 계획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체로 증여보다는 상속을 선호했고, 사전 증여가 2014년 32%에서 2018년에는 53%까지 높아졌다. 평균적으로 65세 정도에 결혼 적령기 30대 자녀에게 증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택 구입 자금이 필요한 40대도 28%에 달했다.
최근에는 신탁상품에 가입하거나 가족법인 설립을 고려하는 부자들도 늘고 있다. ‘유언대용신탁’은 일정 수수료만 내면 금융회사와 계약한 대로 유언서 내용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본인의 의사대로 집행할 수 있어 주목을 끈다. 하지만 KB금융 조사에서는 부자들 가운데 이 제도를 활용하겠다는 응답은 21.5%에 그쳐 차이를 보였다. 그 보다는 변호사나 법무사에 의지하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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