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안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참사로 인해 비행기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대중 교통수단이 된 항공기의 안전 문제를 깊이 재 점검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조종사이자 항공안전관리와 비행품질관리 업무까지 익힌 신지수 파일럿이 지난 4월 <비행기에 관한 거의 모든 궁금증>이라는 책을 통해 비행기 사고 및 안전 대책 등을 밝힌 것이 있어 소개한다.
- 비상 시 회항할 수 있는 국제 기준으로 EDTO(Extended Diverion Time Operation)가 있는 것으로 안다. “EDTO는 우리 말로 번역하면 ‘회항시간 연장운항’이다. 국제적인 운항 표준이다. 비행기는 이륙 전에 ‘비행계획’을 세워 관제기관에 제출하는데, 안전 운항을 위해 의무적으로 비상상황 시 60분 이내의 거리에 공항이 있도록 비행 루트를 짜야 한다. EDTO란, 이 60분 안에 착륙할 공항이 없는 지역을 운항할 때 이 보다 더 긴 시간을 회항해 가까운 교체공항까지 비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조치다.”
- 모든 비행기는 EDTO 기준이 같은가. “90분부터 120분, 180분, 240분 등 여러 등급이 있다. 120분이 허가되었다면 그 안에 착륙할 수 있는 거리에 교체공항이 있으면 된다. 보통 240분이면 지구상에 직선 거리로 비행하지 못할 루트가 거의 없다. 성능이 좋고 최신 장비가 장착되어 더 안전하다고 평가받는 비행기에 더 높은 등급이 부여된다. 최신 기종에 허용되는 최대 시간은 370분이다. 항공사의 운영 능력과 조종사 경험치 등도 함께 고려된다.”
- 도저히 교체공항까지 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EDTO 교체공항은 항공기가 내릴 수 있는 충분한 활주로 길이와 항법시설, 소방시설 등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거리나 조건이 안 맞아 회항이 어려운 경우도 생길 수 있다. 착륙할 곳이 없어 바다 위에 내리는 것이 ‘딧칭(Ditching)’인데, 이럴 때는 가능한 구조가 쉬운 위치로 정해야 한다. 참고로, ‘메이데이(May-day)’보다 한 단계 낮은 수준의 비상을 알릴 때는 ‘팬팬(Pan-Pan)’이라고 외친다.”
- ‘백업 루트’라는 것은 또 무엇인가. “비행 항로는 비행 중 어디서든 3시간 안에 교체공항으로 회항할 수 있도록 짜여진다. 항로 중 두 개의 교체공항까지 가는 시간이 서로 같아지는 지점을 ‘ETP(Equal Time Point)’라고 한다. 비상상황에서는 이 지점을 기준으로 어느 공항으로 갈 지를 빨리 결정해야 한다. 이 때 ‘백업 루트’가 필요하다. 실제로 가는 항로가 아니라 비상 시를 대비해 비행관리 컴퓨터 시스템(FMS)에 백업으로 저장해 두는 항로다.”
- 항공기 조종은 기장과 부기장 두 명만 하는 것인가. “‘릴리프 기장’도 있다. 장거리 비행 시 근무 교대를 해 주는 기장이다. 조종사는 안전을 위해 하루 8시간 이상 비행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 이상 장거리 비행에는 릴리프 조종사가 함께 탑승한다. 기장과 부기장, 릴리프 기장이 교대로 휴식을 취하며 비행하는 것이다. 릴리프 기장도 반드시 기장 자격을 갖춘 사람이 임명된다.”
- 비행기 엔진이 모두 꺼질 경우 최후의 비상 조치가 무엇이 있나. “ 엔진이 모두 꺼지면 엔진 힘으로 유지되던 전기와 유압이 모두 공급을 멈추게 된다. 이 때 최후의 보루가 ‘RAT(Ram Air Turbin)’이다. 일종의 바람개비 같은 것으로, 평소에는 날개 속에 숨겨져 있다가 비상시에 펼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바람개비가 풍력으로 비상 발전기를 돌려 유압을 살려내고 비상 전력을 공급하게 된다. 외부 공기의 힘으로 동력을 생산하는 것이다.”
- 비상 시 자동 조정장치로 운항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 않나. “‘오토파일럿(Autopilot)’이라고 한다. 입력된 고도와 경로, 속도로 비행하도록 조종면과 엔진이 저절로 움직이는 자동조종장치를 말한다. 오토파일럿이 작동되면 오토랜딩(Auto-landing), 즉 자동착륙이 가능하다. 다만, 항공기 장비와 공항 활주로 시설 모두 이 기능을 사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춰야 가능하다.”
- 비행기가 번개를 맞는 경우도 자주 있나. “주로 5000~1만 5000피트(1500~4500㎞) 사이 저고도의 뇌우를 동반한 강한 비구름 속에서 가끔 번개를 맞는다. 날개 끝이나 비행기 앞 부분처럼 돌출된 부분에 맞기가 쉽다. 그래서 이들 부위에 ‘스태틱 디스차저(Static Discharger)’라는 작은 봉들을 달아 정전기를 흘려 보낸다. 1963년에 팬암항공 B707가 번개를 맞아 연료탱크가 폭발한 사건을 계기로 표면 전도율이 좋은 재질을 사용토록 하고 있다.”
- 비상 상황 시 연료를 버리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안전한 착륙을 위해선 제한 중량까지 비행기 무게를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최대 착륙 중량은 기체와 랜딩 기어의 강도와 관련이 있다. 대형 비행기에는 연료 방출 장치인 ‘푸얼 덤핑(Fuel Dumping)’ 혹은 ‘퓨얼 제츠닝(Fuel Jettisoning)’ 시스템이 있다. 기종에 따라 분당 1톤에서 2톤 정도의 속도로 연료를 내보낼 수 있다. 국제 표준으로 연료 방출은 4000피트(1200m) 상공 이상에서만 하도록 되어 있다.”
- 항공기 사고는 대형 참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항공기 사고가 그렇게 많은가. “통계상으로 보면, 예상 외로 모든 교통 수단 가운데 가장 안전한 것이 비행기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의 모든 교통사고를 분석한 데이터에 따르면 10억 여객마일 당 사고 사망자는 비행기가 0.07명으로 가장 적다. 대중버스가 0.11명, 기차가 0.43명이었다. 모든 종류의 자동차는 7.3명, 오토바이는 무려 212명에 달했다.”
- 비행기는 클수록 더 안전한가. “경비행기는 최소 10석 이상을 갖춘 항공사 비행기에 비해 사고율이 10배가 넘고, 사망 사고율은 100배나 된다는 통계가 있다. 소형일수록 기체에 비해 날개가 크고 넓적해 난기류에 더 많이 흔들릴 수 있다. 200명 이상이 타는 보잉 B707은 40~50인승 터보 프로펠러 비행기보다 추락 시 승객 생존율이 더 높다. 충격 흡수력이 높은데다 정비와 운항통제, 조종사 훈련 등이 더 철저하기 때문이다.”
- 비행기 사고 시 생존을 위한 골든 타임은 얼마나 되나. “통계에 따르면 착륙 사고 후 화재가 났을 때, 90초 안에 탈출하지 못하면 그 이후부터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진다. 좌석별 생존 분포를 보면, 비상구에서 5열보다 멀리 떨어진 자리부터 생존율이 크게 낮아진다. 비행 공포증이 있는 사람들은 가능한 비상구 가까운 곳에 앉고 ‘마의 11분’이라고 불리는 이륙 후 3분, 착륙 전 8분 동안은 좌석벨트를 단단히 매고 자세를 바로 하는 것이 좋다.”
- 랜딩 기어는 언제 올리고 언제 내리나. “랜딩 기어는 비행기가 이륙해 공중에 떠 안정적으로 상승하기 시작하면 바로 올려진다. 랜딩 기어를 올려야 공기 저항이 줄어 상승이 더 용이해 지고 안정적으로 날 수 있다. 착륙 때는 마지막 강하를 하면서 가능한 늦게 내린다. 보통은 착륙 2~4분 전에 내린다. 랜딩 기어는 일종의 공기 저항 장치를 이용하는 것으로, 착륙 시 브레이크 기능을 한다.”
- 활주로는 한 방향으로만 이용하나. “공항에 활주로가 하나든, 여러 개든 기본적으로 한쪽 방향만 이착륙에 사용된다. 바람의 방향 때문이다. 비행기는 맞바람을 맞으며 착륙해야 안전하므로 조금이라도 맞바람이 부는 쪽의 활주로를 사용한다. 뒷 바람은 초속 5m당 착륙 거리는 15~20% 가량 늘어난다. 기종에 따라 보통 초속 5m에서 7m 정도의 뒷 바람까지는 착륙이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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