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20년 전인 2005년에 이미 세계 최초로 ‘초고령사회’가 된 나라다.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어선 것이다. 현재는 30%마저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일본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 가운데 하나가 ‘아키야’, 즉 빈집이다.
우리나라 역시 지역소멸을 걱정할 정도로 고령화와 인구 감소 우려 속에 빈집이 크게 늘고 있다. 그런데 걱정만 하는 우리와 달리 일본에서는 이 빈집을 활용한 비즈니스가 대단히 활발히 펼쳐지고 있다. 부동산 회사와 벤처기업들은 물론 공공기관들까지 속속 나서고 있다.
일본 정부가 2023년에 빈집 소유주가 건물 용도를 쉽게 바꿔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어준 덕분이다. <도쿄 트렌드 인사이트 2025>를 쓴 정희선 트렌드 분석가를 통해, 지역 활성화까지 성과를 내는 일본의 ‘빈집 비즈니스’ 성공 사례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알아보자.
◇ 민·관, 빈집 문제 해결로 지역 활성화까지 닛산자동차는 민간 기업 중 빈집 문제 해결을 지역 경제 활성화로 진화시킨 유용한 사례를 제공했다. 닛산은 빈 집이 350채가 넘는 이바라키현의 다카하기시와 함께 지난 2021년에 ‘어드벤처’라는 관광 이벤트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차박’과 ‘빈 집’을 연결한 아이디어로 당시 캠핑 족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도쿄 도심의 5만 채가 넘는 빈 집을 활용한 ‘카메야 키친’도 눈길을 끌었다. 이타바시구의 한 상점가에 위치해 있던 80년 전통의 신발가게 겸 주거지를 개조해 공유 키친으로 만들었다. 점포 리노베이션부터 관리까지 젝트원(JECT ONE)이라는 부동산 회사가 운영하는 아키사포가 맡았다. 이 회사는 지금 100명의 직원에 연 매출이 132억 엔 규모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기업들과 정부는 빈 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집을 사전에 관리해 빈집 활용도를 높이는데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거주지 종활’ 프로그램도 그 일환이다. 빈 집이 될 가능성이 있는 주택에 대해 친족 간 협의를 쉽게 진행할 수 있도록 절차와 활용방법을 소개해 준다. 고령자에게는 나중에 주택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이른바 ‘종활 세미나’를 통해 가계도를 작성토록 해 상속인이 누구인지도 확인해 둔다.
◇ 빈 집과 무인역(無人驛)과의 만남 ‘분산형 호텔’ 마을 자체가 소멸될 위기에 처한 곳이라면 철도역 이용객도 급감하기 마련이다. 이용객과 역무원이 아예 없거나 매우 적은 무인역이 2020년에 이미 일본 전역에 4564개로, 전체 역의 절반에 달해 유지비 등의 문제로 정부와 각 지자체의 골칫거리였다. 이 문제를 해결한 기업이 JR동일본이 출자한 스타트 업 ‘연선 마루고토’다.
마루고토는 ‘통째로’ 라는 뜻이다. 철도가 위치한 지역을 통째로 개발한다는 의미다. 무인역의 역사를 호텔의 프런트 데스크로 만들고 빈집이 된 오래된 민가를 객실과 레스토랑으로 개조해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개발한 것이다. 그 첫 프로젝트가 지난 5월에 도쿄 중심부에서 약 60㎞ 떨어진 인구 5000의 작은 시골 마을 오쿠타마(奧多摩)에서 공개되어 큰 화제를 모았다.
역에 내리면 역사에서 바로 호텔 체크인이 된다. 역을 나오면 전동 삼륜차나 자전거로 숲을 지나 숙박시설로 이동한다. 연선 마루고토는 2040년까지 일본 내 30개 지역의 마을을 지역호텔로 만들 계획이다. 숙박비도 저렴하고 고즈넉한 마을 분위기 덕분에 외국 관광객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고 한다. 마을에도 활기가 돌고 경제적으로도 큰 도움이 되어 일석이조다.
JR 죠예츠선의 도아이(土合)역도 화제다. 지하 승강장에서 역사까지 무려 462개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 곳으로, 실제 하루 승객 수가 10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0년 11월에 숙박시설이 들어서고 역무실은 카페로 바뀌었다. 주변에 텐트 촌과 야외 사우나가 설치되고 지하 홈에서는 저온숙성된 크래프트 맥주를 만들어 팔았다. ‘지하 요새 역’이라는 입소문을 타면서 특별한 경험의 관광 명소로 등극했다.
◇ 호텔도 진화한다… ‘도심 분산형 호텔’ 주목
분산형 호텔 숙박시설 중 또 주목받는 모델이 세카이 호텔이다. 이 호텔은 사용되지 않는 도심 상점가의 점포들을 호텔 객실로 개보수해 운영한다. 오래된 상가나 공장의 외벽을 그대로 유지해 레트로 감성을 유지하면서 유니크한 분위기를 연출해 주목을 끈다. 세카이 패스라는 상품권을 제공해 주변 상점가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게 해, 숙박객들에게 상점가 전체가 하나의 호텔로 느껴지게 만든다.
일본의 이런 분산형 호텔은 2018년 6월에 정부가 ‘여관업법’ 개정을 허용하면서 가능해 졌다. 그 전까지는 숙박시설 1개당 최소 객실 수 등의 규정과 함께, 시설이 분산되어 있으면 각 시설마다 프런트 데스크 설치가 의무화되었다. 하지만 법 개정 이후 객실이 하나여도 호텔로 영업이 가능하고, 분산되어 시설을 운영해도 프런트 데스크는 한 곳만 운영할 수 있게 되면서 관련 비즈니스가 날개를 달았다.
법 개정에 맞춰 일본 최초로 분산형 호텔을 운영하기 시작한 곳은 호텔 닛포니아다. 1950년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을 호텔로 바꾸어 개발하고 있다. 최대한 건물 원형을 보존하고 일본의 옛 풍경을 체험할 수 있는 시설로 탈바꿈해 인기다. 평균 30~40%의 가동률로도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도록 가격을 설정해 이용자 만족도를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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