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는 어르신들] 60대 허곡지 할머니, 뇌사 장기기증으로 새 생명 살리고 하늘나라로

박성훈 기자 2025-04-10 10:07:51
생전의 허곡지 할머니. 사진=한국장기조직기증원

남편을 뇌졸중으로 잃은 지 5년 만에 본인도 똑같은 질환으로 하늘나라로 떠난 한 어르신이 있다. 부모를 한 순간에 잃게 된 자녀들은 아픈  마음에도 어머니의 평소 유언 같았던 말씀을 쫓아 뇌사 장기기증을 결정했다. 덕분에 한 명의 생명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지난 3월 8일 대구가톨릭병원에서 69세 허곡지 할머니가 하늘의 천사가 되어 떠났다. 허 어르신은 올해 2월 28일에 안타까운 사고로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으로 긴급히 이송되었다.

하지만 의료진의 헌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뇌사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후 허 어르신의 가족의 동의로 간장을 기증하고 소중한 한 명의 생명을 살린 채 생을 마감했다.

대구에서 2남 5녀의 다복한 가정에서 여섯째로 태어난 허 할머니는 평소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고 늘 조용한 성격이다고 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특히 누군가 어렵다는 얘기를 들으면 발벗고 나서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고 애쓴,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더욱이 그녀는 남편이 30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가세가 기울자,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섬유공장과 자동차 부품 공장, 요양보호사 등 힘든 일을 마다 않고 헌신했다. 남편이 결국 5년 전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가족의 경제를 사실상 혼자 떠안고 산 셈이다.

그렇지만 허 할머니는 주말이면 가까운 친구들과 산에 자주 올랐을 정도로 건강에도 남다른 공을 들였고, 퇴근 후에는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며 자족하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뇌졸중에 빠지자 가족들도 모두 황망했다고 한다.

허 씨의 아들 장재웅 씨는 그렇게 고생만 하다 갑자기 떠난 어머니에게 끝없는 감사의 마음과 함께, 살아 생전에 좀더 도와드리고 기쁘게 해 드리지 못한 것에 회한이 남는다고 했다.

장 씨는 “아버지도 뇌졸중으로 고생하시다 5년 전에 떠나셨는데 어머니마저 뇌사로 떠나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하늘나라에서 아버지와 함께 편히 잘 쉬세요. 살면서 못 했던 말인데 사랑해요. 엄마”라며 뜨거운 눈물을 떨구었다.

장 씨를 비롯해 허 할머니의 자녀들은 “조금이라도 어머니가 다시 깨어날 희망이 있다면 기적을 기다리겠지만, 이대로 누워계시다 삶이 끝나기보다는 누군가를 살리는 아름다운 일이 어머니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 기증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박성훈 기자 shpark@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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