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 특강] 연명의료, 생명만큼 소중한 존엄성을 신중하게 지켜야

박성훈 기자 2023-12-26 07:46:33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 김영삼 교수


2018년부터 우리나라는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연명의료결정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환자의 소중한 생명과 그만큼 소중한 존엄성을 다루는 결정이기에 매우 신중한 절차들로 진행된다. 세브란스병원 호흡기내과의 김영삼 교수가 <세브란스 소식>을 통해 우리나라 연명치료에 관한 글을 남겨 주목된다.

김영삼 교수는 “환자가 겪는 고통에 공감하고 환자가 내린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가족 혹은 의사가 환자의 뜻에 반해 생명 연장을 결정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연명의료결정제도는 환자 본인의 뜻을 존중하고 고통을 줄여서, 존엄성을 유지하며 임종을 맞이하도록 돕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상기시킨다. 

그럼에도 아직도 환자의 결정을 존중하지 않고 가족의 반대로 인해 환자가 중환자실에서 원치 않는 치료를 받다 임종을 맞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 교수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의사에게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가치지만, 환자가 존엄성을 지키면서 임종을 맞이하도록 도와주는 것 역시 중환자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연명의료’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시행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그리고 치료 효과 없이 임종 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의학적 시술인 체외생명유지술(ECLS), 수혈, 혈압상승제 투여를 말한다. 담당 의사가 환자의 최선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할 필요가 있다고 의학적으로 판단하는 시술이 모두 포함된다.

연명의료결정법을 적용받는 환자는 말기 환자와 임종 과정의 환자로 나뉜다. 말기 환자는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고, 증상이 점차 악화되어 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단을 받은 환자를 말한다. 임종 과정의 환자는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명이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으며, 증상이 급속도로 악화해 사망에 임박한 상태로 판단한 환자를 말한다.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질환 진단을 받거나 회복 불가능 상태에 빠진 상황이 아니더라도, 죽음에 대해 미리 고민하고 준비해 본인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고 싶을 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다. 19세 이상 성인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공인된 기관에서 연명의료 중단 등 결정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해 보관한다.

김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다고 연명의료를 시행하지 않는다 거나 중단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의사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자칫 너무 늦게 판단해 환자가 적절한 임종 돌봄을 받을 기회를 놓칠 수 있고, 너무 서두르다 부적절한 판단 또는 의학적 치료와 회복의 기회를 놓칠 수 있으므로 신중하게 판정해야 한다.

이후 해당 환자나 환자 가족에게 연명의료 중단 의사를 다시 확인하는 과정을 거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고 환자가 의사 판단 능력이 있으면, 담당 의사 또는 전문의가 함께 의향서 등록 여부를 확인하고 사전 계획한 연명의료 의사를 재확인한다. 이때 환자가 내용 변경을 원하면,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함께 연명의료계획서를 새로 작성하게 된다.

문제는 중환자실로 오는 환자들 대부분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지 않은 경우라는 점이다. 말기 환자 또는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치 않거나 중단을 요청하면, 스스로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에서 담당 의사와 함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환자가 의식이나 의사 판단 능력이 없고, 미리 작성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도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이때는 환자 가족 2인 이상이 연명의료에 관한 환자의 의사를 동일하게 진술하면, 이를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가 확인하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다만, 진술과 배치되는 내용의 다른 환자 가족 진술 또는 환자 본인이 직접 작성한 문서나 녹음물, 녹화물, 이에 준하는 기록물에서 스스로 연명의료에 관한 의사를 직접적으로 표명한 객관적 증거가 있는 경우에는 환자의 의사로 추정하지 않는다. 

김 교수는 “환자가 의사를 직접 표현할 수 없는 의학적 상태이고 환자의 의사를 확인하거나 추정할 수도 없을 때는, 환자 가족 전원이 합의한 경우에 한해 연명의료 중단 결정을 내리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고 전한다. 이때 가족은 19세 이상의 성인으로 배우자나 1촌 이내 직계 존비속, 2촌 이내의 직계 존비속으로 국한된다. 이에 해당하는 사람이 없으면 형제자매까지 포함된다.

  박성훈 기자 shpark@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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