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신간] 박정재 <한국인의 기원>

박성훈 기자 2024-09-18 10:52:33

한국인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저자인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가 고기후학과 고고학, 역사학, 언어학 지식과 데이터 베이스를 망라해 그 질문에 답을 준다. 그는 한국인의 뿌리를 ‘추위를 피해 남하한 기후 난민’이라고 단언한다.

저자는 기후변화가 우리 문화를 만드는 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혹한을 피해 북방민이 남쪽으로 이동한 이른바 ‘기후난민’ 들이 전파한 문화가 고대 국가를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으며, 이 같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수만 년 동안 다양한 기원의 사람들이 섞이며 한반도에 흘러 들어와 모여 산 사람들이 바로 한국인이라고 말한다.

2만 5000년 전 마지막 최악의 빙하기 때의 극심한 추위와 온화한 홀로세 기후 속 8200년 전의 갑작스런 한랭화, 그리고 홀로세 후반기 적도 서태평양 해수면 온도와 태양 흑점 수의 변화로 인한 주기적 건조 한랭기 등 관련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시한다.

고유전학의 발전 덕분에 최근 한반도의 기원도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아프리카를 떠난 사피엔스가 한반도에 이르게 된 경로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것은 물론 고기후학의 데이터를 통해 당시 사피엔스가 왜 이주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추론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탈출해 유라시아 각지로 퍼져나간 후 지역별로 집단을 조성한 과정들을 추적하고, 북방의 수렵채집민 집단과 농경민 집단이 기후 변화를 피해 언제, 어떻게 한반도로 내려와 지금의 한국과 한국인을 형성했는지를 파헤친다.

저자가 한국인의 기원을 추적하는 데 핵심 키워드는 역시 ‘기후 난민’이다. 주인이 없이 비어 있던 땅으로 사람들을 이끈 것이 기후 변화였다는 것이다. 정주할 터전을 찾던 북방민들이 한반도로 들어와 정주민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기후변화의 결과였다고 얘기한다.

그는 중국 랴오허 문명의 중심인 훙산 문화나 샤자뎬 문화를 일구었던 고대인과 우리 한국인이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다고 말한다. 고인돌에서 채취한 DNA 자료도 한반도인이 한족보다 랴오허 문명의 주축이었음을 암시해 주는 증거라고 제기한다.

저자는 한국 청동기시대 중기의 대표적인 문화이자 한반에 처음으로 벼 농경 문화를 전해 준 송국리 문화의 주인공을 추적했다. 랴오허 유역에 자리잡았던 샤자뎬 하층문화가 약 3400년 전 전성기를 지나 급격한 추위를 피해 랴오허 유역으로 모여들었고, 서쪽과 북쪽 지역의 난민들까지 이 근처로 집결했다고 추정했다. 

저자는 샤자뎬 하층문화 사람들이 물리적 갈등을 피해 남하하다가 논을 조성해 곧 쌀을 생산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이 송국리 문화의 주인공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갑작스런 추위가 밀어닥쳤던 3200년 전 랴오허 유역과 달리 당시 한반도 남부에서는 주거지 수가 급증했다는 사실을 추론의 근거로 제시한다. 

그는 또 현대 한국인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을 일본인이 아닌 북중국인이라고 주장한다. 현대 한국인에게는 조몬인의 유전 성분이 거의 없지만 일본인에게는 조몬인의 유전자가 유전체의 10% 정도를 차지할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원시 한국어가 2300년 전 랴오허 지역에서 세형동검을 앞세워 한반도로 들어온 유목 문화 집단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휘트먼의 가설’을 샤자뎬 상층문화에 포함시키고, 특히 고조선과의 관계 때문에 자주 언급되는 랴오시의 십이대영자 집단도 연계한다. 

그는 사람들이 기후 변화와 전쟁을 피해 랴오허강을 건너왔고, 그 과정에서 랴오둥에 있던 고조선 사회는 공격을 받아 한반도 서북부까지 떠밀려 내려오게 되었다고 추론한다. 이들이 원시 한국어를 썼던 무리였을 것으로 추정한 것이다.
저자는 기후변화에 근거해 한국인의 2100년 모습을 상상해 본다. 기후 온난화는 이제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다가온 현실이라며, 온난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못할 경우 인류는 어떻게 될 것인지 시나리오를 상상한다.

그는 “지구 온난화는 기온 상승 그 자체보다, 그에 따라 늘어나는 기상 이변 때문에 더 무서운 것”이라고 말한다. 온도가 더 오르면서 여름 폭염과 겨울 가뭄, 산불, 급격한 작물 생산량 감소, 해수면 상승 등 수 많은 난제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저자는 “극심한 기후 변화는 늘 기후 난민을 야기했으며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라며 “따라서 지금부터라도 온난화의 관점에서 국내외 시스템을 종합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한반도인의 존립을 위해선 내부적으로는 종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출산률 증가 및 외국인의 유입, 외부적으로는 북쪽의 국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확립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 내린다.

 박성훈 기자 shpark@viva2080.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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