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령자들이 처방받아 먹는 약이 평균적으로 4개 안팎이라고 한다. 노인들의 40% 가량은 5종 이상의 처방 약을 복용하는 이른바 ‘노년기 다제 약물’ 복용자들이다.
노년에 여러 가지 약을 먹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험성을 갖는다. 만성질환으로 먹는 약이 아닌 약까지 과다 복용하면 입원이나 사망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보고도 있다. ‘노년에는 약이 병을 만들기도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 ‘내 몸에 독이 되는 약’ 알아야 노인들 가운데는 어느 한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른바 ‘닥터 쇼핑’을 하며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는 이들이 있다. 여기에 영양제까지 추가되면, 평소 들고 다니는 손 가방에 약 봉다리가 한 가방이다.
복용하는 약이 많다고 건강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약과 약 사이의 부작용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처방전대로 약을 복용했다가 심한 어지럼증이나 식용 저하, 인지 기능 저하 등을 경험하는 경우가 자주 발견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노화가 더 빨라진다.
아프면 약부터 찾는 습관이 병을 낫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처방전을 받아 약을 먹었는데도 금방 낫지 않는다고 또 다른 의사를 찾는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어떤 약을 먹는 지 의사와 제대로 된 상담을 하지 않은 채 또 다른 약을 처방 약을 받아 드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병이 많고 노쇠한 어르신에게 흔히 문제를 일으키는 약을 ‘잠재적 노인 부적절 약제’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졸피뎀’이다. 노약자의 인지 기능을 떨어뜨리고 섬망을 야기하기도 해 사용이 억제되는 약물이다.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는 “약은 병을 치료할 수도, 병을 만들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면서 “슬기로운 의료 이용을 통해 자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안전한 도구로 활용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 약 과다복용을 막으려면 전문가들은 우선, 나이가 들수록 자기만의 ‘주치의’를 둘 것을 권한다. 젊었을 때 이곳 저곳 병원을 쇼핑했다면, 중년 이후로는 각각의 질환에 따른 처방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확실한 주치의를 정해 꾸준히 관리를 받으라는 것이다. 가능하면 병원도 이곳 저곳 다니기 보다는 자신의 병력 데이터를 보유한, 주치의가 있는 병원을 특정하고 진료를 보는 것이 여로 모로 유리하다고 말한다.
다음으로, 약 보다는 건강한 생활습관을 들이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만병통치약’이란 세상에 없다. 새로운 증상이 발견될 때마다 의료진과 상의해 비약물 치료법에 더 집중하는 것이 낫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알고 보면, 고혈압이나 당뇨, 고지혈증 같은 성인 질환은 잘못된 식습관과 운동부족이 가장 큰 원인이다. 따라서 약 복용에 앞서 생활습관 개선 노력부터 기울이는 게 순서다.
자신이 먹는 약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쌓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처방 약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조치다. 요즘은 약국에서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해 주면서 약의 종류와 성분 등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약 봉지에 프린트까지 해 준다. 반드시 숙지하는 것이 좋다. 잠재적 노인부적절약들을 잘 기억해 두고, 자신의 현재 질환에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가급적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노화를 막는데도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먹는 약의 목록을 정리해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해 두면 새로운 질환이 발견될 때 의사에게 자신의 병력을 정확히 알려줄 수 있어 치료나 약 처방에 큰 도움이 된다. 날자 순으로 병원 이름과 처방 날자, 1회 복용량 등을 적어두면 좋다. 참고로 잠재적 노인부적절약제에 대한 부작용이 의심된다면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진행하는 ‘다제약물관리사업’에 참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댓글
(0) 로그아웃